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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환경토크]묵살당하는 시장의 생태적 진실

falcon1999 2008. 8. 14. 16:00
뉴스메이커

[환경토크]묵살당하는 시장의 생태적 진실

기사입력 2008-08-14 11:03 기사원문보기
택지 개발로 깎여 하얀 허리를 드러낸 산허리. <경향신문>
환경 문제와 씨름하다 보면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개발은 곧 땅값 폭등이라는 공식이 지나치게 굳어진 탓에, 무분별한 개발을 비판하는 목소리조차 부당한 재산권 침해로 비난받는다. 그러니 불편함을 감수하고 더 갖고 싶은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회운동이 인기가 있을 리 없다. 밥도 제대로 못 먹던 과거로 돌아가라는 말이냐는 말을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우리나라 환경이 과연 개선되고 있느냐에 대한 회의도 있다. 환경청이 발족한 지 28년, 환경부로 승격한 후 14년이 지났다.

국가 환경예산도 지난 10년간 3.5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토 면적당 환경오염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1992년 이후 산림, 갯벌, 농지는 해마다 각각 여의도의 22배, 12배, 25배가량 사라지고 있다. 지난 30년 전에 비해 과학기술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했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곱절 이상 증가해 세계 평균 증가율의 4배나 된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환경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으로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환경정책과 제도도 과거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개선했다. 하지만 제도와 시스템이 나아졌다 해서 환경 갈등이 줄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새만금, 천성산, 방폐장 문제 등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신도시, 골프장, 도로 건설, 대운하 등 각종 개발사업이 봇물을 이루는 바람에 사회 갈등은 곧 환경 갈등으로 치부될 정도다. “대한민국은 전 국토에서 굴착기의 굉음이 끊이지 않고 땅값 상승에 대한 즐거운 비명으로 날이 새는 건설공화국이다.” 지난해 한 여당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가 개발 폐해 ‘적극적 조장’ 왜 이렇게 되었을까. 환경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되레 환경 갈등을 촉발하는 진원지로 지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 끝에 내린 답은 이렇다. 정부가 ‘시장의 실패’에 개입하기는커녕, 시장의 생태적 진실을 깔아뭉개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시장주의자가 넘칠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들은 환경 문제에 관해서만은 시장 원리를 적용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면서 이득을 취하는 기업들에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경제성장의 적’ 이라며 몰아붙인다. 정부가 환경 비용이 외부화(externalization)되면서 생겨나는 폐해를 교정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장이 생태적 진실을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환경 순손실 방지제도’와 같은 획기적인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도로 건설이나 택지 개발로 손실되는 생태계 요소의 가치에 상응하는 생태계 복원 의무를 개발 주체가 지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선진국처럼 연안 및 내륙 습지, 훼손되지 않은 하천 구간,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 멸종위기 1급 종 서식지역 등 개발을 금지하는 금기지역(taboo area)을 자연환경보전법에 명시해야 한다.

국가가 ‘시장의 실패’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는 자원 및 에너지 관련 조세제도를 ‘생태적 진실’에 부합하게 개혁하는 것이다. 작년부터 교통세의 일부가 환경부로 전입되고 있지만, 부분적인 손질만으로는 현재의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기 어렵다. 이제는 화석에너지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대신, 늘어난 세수만큼 근로소득세나 법인세를 낮추는 혁신적인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 환경 훼손의 대가에 대한 부담을 늘리고, 노동과 생산에 드는 부담은 줄이자는 취지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에너지 사용에 따른 부담은 늘어나지만, 그만큼 근로소득세가 줄어 조세 부담이 전체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생활을 친환경적으로 바꿀수록 조세 부담이 줄어 실질소득이 증가한다는 이점도 있다. 또한 기업은 법인세 경감으로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환경 갈등의 조정자 역할은커녕 촉발하는 행위자로 나서는 까닭은 시장의 생태적 진실을 깔아뭉개고 있기 때문이다.

<안병옥 환경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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