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전쟁에 참전했던 이스라엘 감독 아리 폴만이 전쟁의 후유증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비인간적인 전쟁과 인간적인 환상을 뒤섞은 <바시르와 왈츠를>은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모두 뛰어넘은 올해 최고 화제작이 11월 20일 드디어 한국에서 개봉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수상작이 발표된 직후, 여러 기자들이 리스트에서 발견되지 않은 한 영화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심사위원장 숀 펜은 한 인터뷰에서 “왜 <바시르와 왈츠를>(이하 <바시르>)이 아무 상도 받지 못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숀 펜은 간단하게 “우리도 그 영화를 좋아했다”라는 말로 평을 마무리했다.
칸에서 세 번째로 상영됐던 <바시르>는 스물두 편 상영이 모두 끝날 때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라서?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시르>는 ‘이스라엘의 반성’을 보여주는 놀라운 영화였다. 강대국이 국가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거침없이 약탈하는 동안 세계의 윤리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바시르>는 잘못을 저지른 국가의 청년이 영화로 양심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억나지 않는 학살의 추억
아리 폴만 감독은 열여덟 살에 이스라엘 군에 입대했다. 평화롭던 한 시절이 지나고 이듬해 레바논 전쟁 부대로 배치됐다. 그가 받은 명령은 팔레스타인 반군을 처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은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반군이 가득 차 있을 레바논의 사브라와 사틸라 캠프로 진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무장한 군인은 없고 노인들과 여자들, 아이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죄 없는 3,000명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당했다. 이게 바로 1982년 9월에 벌어진 ‘사브라와 사틸라 학살’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바시르’는 정식 취임을 9일 앞두고 폭탄 테러로 사망한 레바논의 대통령 바시르 제마엘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군대를 청소하고 북부를 장악하기 위해 기독교 민병대(팔랑헤당) 소속인 바시르 제마엘을 대통령으로 앉힐 계획을 세웠다. 그가 연설 도중 테러를 당하자 팔랑헤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팔레스타인군을 주도자로 판단하고 난민 캠프에 도착해 모두를 죽인 것이다. 연합군이었던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성심껏 도왔다. 하지만 그때 팔레스타인군은 이미 튀니지로 이동한 상황이었고, 난민 캠프에는 진짜 난민들만 남아 있었다. 기독교 민병대와 이스라엘 정부는 이 모든 진행 과정을 모르고 있었을까?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을 죽인 건 정말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일까? 지금은 이 모든 게 땅을 점령하기 위한 ‘음모’였다는 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 문제는 이 전쟁에 참전했던 아리 폴만 감독이 이때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꿈속에 가끔 나오는 이미지는 달빛 가득한 강에서 동료들과 목욕을 하고 군복을 입은 뒤 총을 메고 어딘가로 향하는 게 전부다. 이 ‘머릿속의 지우개’가 <바시르>를 만드는 출발이 됐다.
개인사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바시르>의 주인공은 아리 폴만 감독 본인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전쟁을 기억하지 못한다. 꿈의 의미를 알고 싶었던 아리는 정신과 친구의 조언에 힘입어 당시 전우들을 찾아 인터뷰를 시작한다. 한 명씩 만날 때마다 과거의 사실들이 하나둘 밝혀진다.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과정은 곧 영화의 시나리오가 됐다. 감독은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200만 달러로 전쟁 극영화를 만드는 건 무리였다. 제작비 절감과 동시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무의식과 기억에 대한 부분을 자유롭게 이미지?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40대 중반 아저씨들이 빈 벽을 배경으로 증언을 하는 장면만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애니메이션은 방법에 불과했다. 감독은 이 기회에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림에 전혀 관심 없던 감독은 아트 디렉터 다비드 폴론스키, 애니메이션 감독 요니 굿맨을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첫 작업으로 음향 스튜디오에서 실제 영화를 완성했다. 인터뷰를 녹화해서 뒤섞은 엉성한 다큐멘터리 실사본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토리보드가 됐다. 놀라운 것은, ‘로토스코핑’(<웨이킹 라이프>처럼 실사 필름 위에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3D 기법을 이용했고, 20퍼센트 정도는 고전적인 셀 애니메이션 방식이었다.
<바시르>의 장면들은 크게 다큐멘터리와 환각 장면으로 나뉜다. 다큐멘터리 장면은 고증을 거쳤지만, 환각 장면은 독창적인 상상력을 요구했다. 아리 폴만 감독은 이 두 부분을 전혀 다른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만들었다. 환각 장면은 끔찍한 전쟁을 겪었던 청년들의 순결한 무의식의 반영이다. 그래서 <바시르>는 다큐멘터리이면서 다큐멘터리가 아니기도 하다. 이 모호한 장르 정체성을 헷갈려 하던 언론은 결국 ‘애니 다큐멘터리’(Animated Do cumentary)란 명칭을 확정했다. <바시르>는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 개인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데 있어 독창적인 방법론을 만들어냈다.
전쟁으로 청춘을 잃어버린 세대를 위하여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영웅이 아니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 당시 어린 군인들은 전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바시르>는 부당하게 전쟁을 겪고 그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80년대 초반 세대의 상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 잠시 휴가를 맞이해 고향에 돌아온 아리는 시내 댄스 클럽을 찾는다. 그곳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젊은이들이 기계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다. 탱크에 올라탄 젊은이들은 오히려 활력이 넘친다.
그러나 건강한 활력은 아니다. 그들은 레바논 탄압의 한이 서려 있는 록음악을 열창하며 아무 생각 없이 탱크에서 포탄을 날리고 무차별 사격을 해댄다. 소울이 없는 청년들은 모두 좀비 같다. 주인공 아리는 전쟁에 대한 기억만 잃은 게 아니다. 청춘을, 소울을 온전히 잃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감독은 “<바시르>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정치적인 영화’라는 낙인도 반대다. “우리가 했냐, 그들이 안 했냐 하며 다른 편과 협상하려는 게 아니다. 기본 입장은 전쟁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어떤 것에 대한 영화다.”
또한 아리 폴만 감독은 남다른 ‘학살’의 기억을 갖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부모님 때문이다. 그런데 <바시르>에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던 한 친구는 아리에게 “우리는 나치 같았어”라고 말한다. 과거에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의 가해자로 역사를 반복했던 젊은 날의 죄책감이 영화 <바시르>를 낳은 셈이다. 그래서 <바시르>의 기본 정서는 비판이나 풍자가 아니라 반성과 회한이다.
애니메이션 그 이상, 다큐멘터리 그 이상
<바시르>는 칸국제영화제 이후 여러 매체에서 극찬을 받았다, <스크린 데일리>의 댄 파이나루는 “일반적인 전쟁의 윤리학을 말하는 이 영화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며 시대의 마스터피스로 인정했다. <옵서버>의 제이슨 솔로몬스는 “<바시르>는 범죄와 충격으로 가득 찬 전쟁 영화를 파괴하고, 친숙한 주제를 새롭게 살피고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다”라며 영화적 독창성을 칭찬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삽입된 실사 클립이다. 캠프의 난민들이 시체가 되어 마구 널브러져 있고, 가족을 잃은 여인들은 통곡을 하며 길거리를 배회한다. 아리의 잃어버린 기억이 완성되는 순간, 실제 그곳에서 벌어졌던 참극이 정제되지 않은 채 등장하면서 관객들은 아리의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감독의 의도는 분명했다. “관객들이 ‘멋진 애니메이션’이라며 극장을 나서는 걸 원치 않는다. 실제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여자, 아이, 노인들이 죽었다. 이 마지막 50초는 나에게 본질적인 장면이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찼던 영화에 직설적 표현이 끼어들면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극영화를 보는 기분이던 관객은 순간 <바시르>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효과는 이스라엘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바시르>가 이스라엘에서 개봉했을 때 우익 세력으로부터 많은 혹평이 쏟아졌지만, 아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던 한 가장은 ‘아들 세대에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는 코멘트를 언론에 밝혔다. 폴만 감독이 원한 것도 여기까지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비극의 순환을 막는 것 말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수상작이 발표된 직후, 여러 기자들이 리스트에서 발견되지 않은 한 영화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심사위원장 숀 펜은 한 인터뷰에서 “왜 <바시르와 왈츠를>(이하 <바시르>)이 아무 상도 받지 못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숀 펜은 간단하게 “우리도 그 영화를 좋아했다”라는 말로 평을 마무리했다.
칸에서 세 번째로 상영됐던 <바시르>는 스물두 편 상영이 모두 끝날 때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라서?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시르>는 ‘이스라엘의 반성’을 보여주는 놀라운 영화였다. 강대국이 국가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거침없이 약탈하는 동안 세계의 윤리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바시르>는 잘못을 저지른 국가의 청년이 영화로 양심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억나지 않는 학살의 추억
아리 폴만 감독은 열여덟 살에 이스라엘 군에 입대했다. 평화롭던 한 시절이 지나고 이듬해 레바논 전쟁 부대로 배치됐다. 그가 받은 명령은 팔레스타인 반군을 처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은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반군이 가득 차 있을 레바논의 사브라와 사틸라 캠프로 진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무장한 군인은 없고 노인들과 여자들, 아이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죄 없는 3,000명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당했다. 이게 바로 1982년 9월에 벌어진 ‘사브라와 사틸라 학살’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바시르’는 정식 취임을 9일 앞두고 폭탄 테러로 사망한 레바논의 대통령 바시르 제마엘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군대를 청소하고 북부를 장악하기 위해 기독교 민병대(팔랑헤당) 소속인 바시르 제마엘을 대통령으로 앉힐 계획을 세웠다. 그가 연설 도중 테러를 당하자 팔랑헤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팔레스타인군을 주도자로 판단하고 난민 캠프에 도착해 모두를 죽인 것이다. 연합군이었던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성심껏 도왔다. 하지만 그때 팔레스타인군은 이미 튀니지로 이동한 상황이었고, 난민 캠프에는 진짜 난민들만 남아 있었다. 기독교 민병대와 이스라엘 정부는 이 모든 진행 과정을 모르고 있었을까?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을 죽인 건 정말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일까? 지금은 이 모든 게 땅을 점령하기 위한 ‘음모’였다는 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 문제는 이 전쟁에 참전했던 아리 폴만 감독이 이때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꿈속에 가끔 나오는 이미지는 달빛 가득한 강에서 동료들과 목욕을 하고 군복을 입은 뒤 총을 메고 어딘가로 향하는 게 전부다. 이 ‘머릿속의 지우개’가 <바시르>를 만드는 출발이 됐다.
개인사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바시르>의 주인공은 아리 폴만 감독 본인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전쟁을 기억하지 못한다. 꿈의 의미를 알고 싶었던 아리는 정신과 친구의 조언에 힘입어 당시 전우들을 찾아 인터뷰를 시작한다. 한 명씩 만날 때마다 과거의 사실들이 하나둘 밝혀진다.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과정은 곧 영화의 시나리오가 됐다. 감독은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200만 달러로 전쟁 극영화를 만드는 건 무리였다. 제작비 절감과 동시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무의식과 기억에 대한 부분을 자유롭게 이미지?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40대 중반 아저씨들이 빈 벽을 배경으로 증언을 하는 장면만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애니메이션은 방법에 불과했다. 감독은 이 기회에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림에 전혀 관심 없던 감독은 아트 디렉터 다비드 폴론스키, 애니메이션 감독 요니 굿맨을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첫 작업으로 음향 스튜디오에서 실제 영화를 완성했다. 인터뷰를 녹화해서 뒤섞은 엉성한 다큐멘터리 실사본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토리보드가 됐다. 놀라운 것은, ‘로토스코핑’(<웨이킹 라이프>처럼 실사 필름 위에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3D 기법을 이용했고, 20퍼센트 정도는 고전적인 셀 애니메이션 방식이었다.
<바시르>의 장면들은 크게 다큐멘터리와 환각 장면으로 나뉜다. 다큐멘터리 장면은 고증을 거쳤지만, 환각 장면은 독창적인 상상력을 요구했다. 아리 폴만 감독은 이 두 부분을 전혀 다른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만들었다. 환각 장면은 끔찍한 전쟁을 겪었던 청년들의 순결한 무의식의 반영이다. 그래서 <바시르>는 다큐멘터리이면서 다큐멘터리가 아니기도 하다. 이 모호한 장르 정체성을 헷갈려 하던 언론은 결국 ‘애니 다큐멘터리’(Animated Do cumentary)란 명칭을 확정했다. <바시르>는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 개인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데 있어 독창적인 방법론을 만들어냈다.
전쟁으로 청춘을 잃어버린 세대를 위하여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영웅이 아니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 당시 어린 군인들은 전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바시르>는 부당하게 전쟁을 겪고 그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80년대 초반 세대의 상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 잠시 휴가를 맞이해 고향에 돌아온 아리는 시내 댄스 클럽을 찾는다. 그곳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젊은이들이 기계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다. 탱크에 올라탄 젊은이들은 오히려 활력이 넘친다.
그러나 건강한 활력은 아니다. 그들은 레바논 탄압의 한이 서려 있는 록음악을 열창하며 아무 생각 없이 탱크에서 포탄을 날리고 무차별 사격을 해댄다. 소울이 없는 청년들은 모두 좀비 같다. 주인공 아리는 전쟁에 대한 기억만 잃은 게 아니다. 청춘을, 소울을 온전히 잃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감독은 “<바시르>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정치적인 영화’라는 낙인도 반대다. “우리가 했냐, 그들이 안 했냐 하며 다른 편과 협상하려는 게 아니다. 기본 입장은 전쟁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어떤 것에 대한 영화다.”
또한 아리 폴만 감독은 남다른 ‘학살’의 기억을 갖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부모님 때문이다. 그런데 <바시르>에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던 한 친구는 아리에게 “우리는 나치 같았어”라고 말한다. 과거에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의 가해자로 역사를 반복했던 젊은 날의 죄책감이 영화 <바시르>를 낳은 셈이다. 그래서 <바시르>의 기본 정서는 비판이나 풍자가 아니라 반성과 회한이다.
애니메이션 그 이상, 다큐멘터리 그 이상
<바시르>는 칸국제영화제 이후 여러 매체에서 극찬을 받았다, <스크린 데일리>의 댄 파이나루는 “일반적인 전쟁의 윤리학을 말하는 이 영화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며 시대의 마스터피스로 인정했다. <옵서버>의 제이슨 솔로몬스는 “<바시르>는 범죄와 충격으로 가득 찬 전쟁 영화를 파괴하고, 친숙한 주제를 새롭게 살피고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다”라며 영화적 독창성을 칭찬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삽입된 실사 클립이다. 캠프의 난민들이 시체가 되어 마구 널브러져 있고, 가족을 잃은 여인들은 통곡을 하며 길거리를 배회한다. 아리의 잃어버린 기억이 완성되는 순간, 실제 그곳에서 벌어졌던 참극이 정제되지 않은 채 등장하면서 관객들은 아리의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감독의 의도는 분명했다. “관객들이 ‘멋진 애니메이션’이라며 극장을 나서는 걸 원치 않는다. 실제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여자, 아이, 노인들이 죽었다. 이 마지막 50초는 나에게 본질적인 장면이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찼던 영화에 직설적 표현이 끼어들면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극영화를 보는 기분이던 관객은 순간 <바시르>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효과는 이스라엘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바시르>가 이스라엘에서 개봉했을 때 우익 세력으로부터 많은 혹평이 쏟아졌지만, 아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던 한 가장은 ‘아들 세대에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는 코멘트를 언론에 밝혔다. 폴만 감독이 원한 것도 여기까지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비극의 순환을 막는 것 말이다.
홍수경 기사제공
언제나 좋은 자리 ⓒ 티켓링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