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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오늘 보내야 할 것들, 만들어야 할 것들은 직접 챙기는 편입니다. 그렇게 빨리 시작한 대신, 빨리 끝냅니다. 밤을 새거나 새벽까지 일하지는 않아요. 여성들, 그것도 주부들을 주 고객으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일찍 하루를 마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뿐 아니라 고객들에게도 좋은 인상과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무실 곳곳을 구경하다가 큼직한 액자에 눈이 머물렀다. 한복의 치맛자락을 살포시 잡은 채 얼굴을 감추고 있는 한 여인의 고혹적인 뒤태를 담은 사진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사진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조선 최고의 기생, 황진이였다. "황진이라는 드라마의 의상이 퓨전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기본의 틀은 전혀 변화를 주지 않았어요. 황진이는 16세기 인물이잖아요. 그 당시의 황진이를 대중화시켜야 하는데 그 당시의 자료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요. 거기다가 기생의 옷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제가 변화를 준 것이라고는, 18세기로 끌어올린 것뿐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기생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까요. 그리고 16세기 옷은 재미가 좀 없어요. 기생이라면 섹시하고 요염하고 그래야 하는데 저고리도 길고 옷 자체가 좀 단조롭죠. 18세기 말, 이때는 저고리가 하염없이 올라갑니다.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드라마 <황진이>의 의상으로 비로소 대중들에게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의 대외활동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중국, 일본, 러시아, 핀란드, 그리고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각종 패션쇼와 학술강연, 저고리 전시회 등을 쉴 틈 없이 가졌고 국내에서도 창작무용 <춤, 춘향>의 의상을 담당했을 정도로 오히려 그 활동 폭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제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원했다면 길가에 크게 이름을 붙여놓았겠지요. 이렇게 골목 깊숙이 자리를 잡고 이름도 작게 만들어 걸었지만 찾아올 사람들은 다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일들을 했는데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결국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아요. 보여주고 싶은 것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여전하답니다. 그래서 저의 관심사는 여전히 기생 옷입니다. 기생 옷을 다시 한 번 표현할 기회가 있다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혀 새로운 패턴으로 무장한 옷을 보여주고 싶어요. 신비함으로 가득한 우리 옷……치마저고리의 비례에 따라서 변화가 무쌍한 옷은 우리 한복뿐 입니다. 제가 저고리에 관심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죠." 생활한복과 고급한복을 막론하고, 한복을 개량하고 서양식으로 현대적인 의미에서 간편하게 만드는데 중점을 두는 이 시대에 너무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아닌지 슬며시 의구심이 들었다. "여태까지 생활한복이라면서 간편하게 만든 옷이 어떻게 됐죠? 맞습니다, 결국 묻혀버렸어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요? | ||||
그렇게 책 한권을 다 구경하고 나자, 자연스럽게 설명은 저고리에서 한복 자체로 옮겨갔다. "한복은 평면적인 옷이기 때문에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그 실루엣이 하염없이 변합니다. 한없이 풍성하게 육감적으로 연출할 수 도 있고, 이렇게 확 감아 돌리면 더욱 더 고혹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기모노는 그 상태그대로 입을 수밖에 없지만, 한복은 손으로 치마의 어디를 잡느냐에 따라서도 그 맵시가 달라집니다. 한복은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는 옷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져온 전통이 곧 현대라고 생각한다는 김혜순씨. 그럼에도 현대인들에게 한복을 더 많이 입히기 위해서는 따로 또 필요한 것이 있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한복을 시작하면서 20대 후반에 일본에 갔었습니다. 저는 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한복이 너무 싫었거든요. 왜 우리는 이렇게 우리 한복을 천시할까. 그런데 일본에 가서 보니까 일본의 기모노 가게에는 기모노가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혹시나 싶어서 매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역시나 아무것도 없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젊은 김혜순’은 우리 한복도 더 이상 시장에 아무렇게나 걸린 값싼 옷이 아닌, 만드는 사람도 입는 사람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야 만날 수 있는 옷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보이지 않는, 드러내지 않는 한복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은 ‘젊은 김혜순’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었고, 골목 구석에 차려놓은 한복가게를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 ||||
그래서 김혜순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한복의 고급화를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먼저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 다음은 최고가 되기 위한, 공부 그리고 또 공부뿐이었다. "생활한복은 생활한복대로 편하고 친근한 옷으로 발전을 해야 하고, 고급한복 쪽은 고급한복대로 전통을 유지하면서 점점 더 소중하고 귀한 옷이 되어야 합니다. 최고수준의 우리 옷 한 벌을 만들어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일 수 있을 정도로 갖고 싶은 우리 옷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손쉽게 만들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우리 옷이 필요한 만큼, 평생의 단 한번 귀중하고 소중한 그 순간에는 꼭 한번 욕심을 내어 그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할 수 있는 찬란한 우리 옷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김혜순씨가 생각하는 우리 한복의 생활화이고 대중화였다. 그렇다면 한복의 세계화는? "한복은 원래 외국인들에게 어울릴 수 있는 옷이 아녜요. 치마는 길고 저고리는 작기 때문에 하체가 긴 외국인이 입으면 껑충해 보이기만 할 뿐 예쁘지가 않지요. 방법은 하나예요. 외국인에 맞게 변형시켜서 만드는 겁니다. 러시아에서도 그렇게 일부러 외국인 모델들에게 입히고, 대사관 부인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체형에 맞게 변화를 주어 입혔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안 벗어요. 한번 입어보고는 계속 입고 싶다고, 안 벗는 거예요. 정작 우리는 입기 불편하다고 안 입는 옷을 외국인들은 갖고 싶어 하는 겁니다. 우리 한복 고유의 맵시는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각 나라의 문화와 전통에 맞게 변화를 줄 줄 아는 열린 마음가짐, 이게 바로 한복의 세계화가 아닐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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