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 과학자들이 말하는 ‘좀비 이야기’
《조금 전만 해도 분명히 죽은 시체였다.
그러나 어기적 어기적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걸어온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살아나 산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 》
사스… 탄저병… 조류인플루엔자… 신종 전염병 확산
“정체불명 유행병에 막연한 공포심”
올해는 좀비 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개봉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한동안 좀비 영화가 잠잠한가 싶더니 21세기 들어 서양에서 다시 붐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 ‘REC’를 비롯해 ‘28일후’ ‘28주후’ ‘레지던트 이블’ 등 다양한 좀비영화가 나왔다. 심리학자, 과학자들에게 ‘섬뜩한’ 좀비 이야기를 들어봤다.
○ 감정-지능 갖춘 좀비 등장
왜 이렇게 좀비 영화가 쏟아질까. 영화평론가로도 활동 중인 장근영(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심리학 박사는 “급속도로 퍼지는 정체불명의 유행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 박사는 “2000년대 들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탄저병, 조류인플루엔자 등 원인도 잘 모르고 대책도 마땅하지 않은 신종 전염병이 많이 등장했다”며 “인류가 대비를 못 하고 당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좀비 영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좀비에게 물리면 자신도 좀비가 된다든가 애꿎은 사람들이 아무 대비도 없이 우왕좌왕하다 죽는 장면은 전염병이 번지는 모습과 닮았다. 좀비가 되는 설정도 과거와 달리 T바이러스(‘레지던트 이블’), 분노바이러스(‘28일후’) 등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바이러스성 병원체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 공포영화는 좀비의 원칙이던 ‘걷기만 하며 지능이 없다’는 점을 넘어서며 공포감을 높이고 있다. ‘28주후’에서는 뛰어다니는 좀비가 등장했고, ‘레지던트 이블3’에서는 감정과 지능을 갖춘 좀비가 나온다. 장 박사는 “인간이 좀비에 대해 갖고 있던 우월성이 제거되면서 뇌는 더욱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고 분석했다.
○ 인간 좀비 만든 노벨상 수상자
영화처럼 바이러스가 좀비를 만들 수 있을까. 한번 죽은 시체가 다시 일어난다는 설정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다. 성영철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인류 역사적으로 바이러스가 그런 병을 일으킨 적이 있는지 살펴보면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시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신경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뇌를 파괴하고 좀비처럼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뇌수술이나 약물을 이용해 ‘인간 좀비’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인간을 영혼이 없는 좀비처럼 만들어 노벨상을 받은 사례가 있다.
김대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포르투갈의 신경외과의사인 안토니우 모니스는 1940년대 후반 2만 명의 환자에게 ‘전두엽절제수술’을 시술해 1949년 노벨상을 받았다”며 “잘못된 노벨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이 수술은 눈 밑으로 칼을 넣어 뇌의 전두엽 일부를 파괴하는 것이었는데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시행됐다. 그러나 수술받은 환자들이 병세는 나아졌지만 자발성, 창의성이 약화되고 사교성도 없어졌으며 인격까지 변하는 등 부작용이 너무 커 1960년대 이후 사라졌다.
김 교수는 “고등정신 활동을 맡은 뇌의 전두엽이 망가지면 자아가 상실되며 좀비 같은 행동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 시체에서 좀비가 탄생하다
사람들은 왜 시체가 좀비가 될 수 있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걸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전중환 연구원은 “인류가 시체에 대해 두려움과 경외감이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갖도록 진화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체를 그대로 두면 기생충이 들끓고 전염병이 돌아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인류는 시체를 두렵게 생각하고 사는 곳에서 먼 곳에 파묻는 장례의식을 진화시켜 생존 능력을 높였다. 그러나 조금 전만 해도 살아 있던 자신의 부모, 가족, 친척에 대한 애정을 바로 끊고 시체를 무생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전 연구원은 “시체에 대해 갖게 되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시체에서 빠져나온 혼령이라는 존재를 낳았다”며 “좀비도 시체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에서 나온 ‘진화적 부산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 뇌과학으로 본 공포심리
“엔도르핀, 고통 느낄 때 더 많이 나와”
교감신경도 활성화… 공포영화 끝나면 편안해져
무서움에 치를 떨면서도 우리는 왜 공포영화를 볼까.
최준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포영화를 본 뒤의 안도감’을 꼽았다. 최 교수는 “공포영화를 볼 때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나지만 영화가 끝나면 앞의 반응을 누그러뜨리는 반응이 따라와 편안해진다”고 설명했다.
장근영 박사도 “뇌를 기분 좋게 하는 엔도르핀 호르몬은 고통을 느낄 때 더 많이 나온다”며 “공포영화를 볼 때도 엔도르핀이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떤 공포영화가 가장 무서울까.
김대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공포에는 본능 공포와 학습 공포가 있다”고 했다. 뱀이나 고음의 비명소리는 본능 공포를 일으킨다. 이야기를 추측하다 머릿속에서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은 학습 공포다.
본능 공포는 자극이 편도체로 바로 가서 공포감을 일으킨다. 학습 공포는 대뇌피질로 간 뒤 다시 편도체를 자극한다. 본능 공포는 자극이 사라지면 바로 사라지지만 학습 공포는 대뇌피질이 계속 편도체를 자극해 공포가 오래 가고 강도도 셀 수 있다.
김 교수는 “영화 ‘링’을 본 뒤 귀신이 나왔던 TV 브라운관을 볼 때 무서운 기분이 드는 것이 학습 공포”라며 “요즘 공포영화는 학습 공포가 잘 생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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