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 전국 국립박물관 “관람객 곁으로”
3일 오후 9시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개장 시간이 끝나 불 꺼진 고고관, 미술관에서 한 줄기 손전등 불빛이 새 나왔다.
불빛은 국보 275호 말탄무사모양토기, 국보 189호 천마총 출토 관모, 국보 195호 토우달린목항아리를 차례로 향했다.
불빛의 주인공은 이초은(대구 용전초교 6년) 양. 같은 조 친구 4명과 ‘국립경주박물관 명품 100선’에 해당하는 유물을 찾은 뒤 유물의 쓰임새를 상상해 적었다.
초등학생 45명의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다. 백미는 국보 87호 금관총 금관이 있는 특별전시실에서 하룻밤 자기. 아이들은 금관 바로 옆에다 침낭을 깔았다. 전시실 불이 꺼지고 금관 주변의 미세한 조명만이 남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아름다워요!”
○ 퀴즈… 유물찾기… 어린이들에 인기
국립경주박물관이 3, 4일 처음으로 마련한 ‘뮤지엄 스테이’다. 1박 2일 일정으로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국보 등 귀중한 문화유산을 가까이에서 둘러보는 행사.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박물관을 단지 전시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꿈꾸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 뮤지엄 스테이를 기획했다”며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아 내년부터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립박물관들이 관람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박물관을 친근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2, 3일 1박 2일 일정으로 마련한 ‘박물관은 살아 있다’도 비슷한 프로그램. 2일 초등학생 40여 명은 고고관, 역사관, 미술관에서 퀴즈를 풀며 유물을 찾았다. 퀴즈를 풀 때마다 하나씩 받은 퍼즐 조각을 다 맞추자 하나의 문장이 완성돼 모습을 드러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깨닫는 과정이다.
8월 현재 전국 12개 국립박물관이 운영 중인 프로그램은 성인 교육을 포함해 무려 264가지. 운영 횟수는 2717회, 참가자는 43만1477명을 넘었다. 박물관이 단지 옛 유물을 전시하는 박제된 공간에서 벗어나 명실상부 ‘또 하나의 학교’로 거듭나고 있는 것.
국립광주박물관은 지난해부터 ‘내 소원을 쌓은 탑’ ‘찰랑찰랑 금동관’ 등 매달 주제를 바꿔가며 ‘전시 유물 연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인기다. 광주박물관 이영신 교육사는 “특별한 전시가 있을 때나 한 번 올 관람객들이 매달, 매주 바뀌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찾는다”고 말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올해 초부터 운영하는 ‘고고씽 어린이 박물관 학교’도 경쟁률이 4 대 1에 이를 정도. 일회성 행사에서 벗어나 방학 중 3일간 선사시대 제사 의식 체험, 도자기의 상감 기법 체험, 전통 한지, 활자 만들기 체험을 집중적으로 마련했기 때문이라는 게 박물관의 분석이다.
○ 다문화가정 등 찾아가는 프로그램도
다문화가정, 군인, 노인 등 ‘박물관 소외 계층’ 대상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도 변화다. 이주 여성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찾아 해당 나라의 문화, 역사를 가르치는 ‘찾아가는 박물관 다문화캠프’(국립청주박물관), 군인들에게 전통 공예를 체험하게 하는 ‘병영문화학교’(국립춘천박물관) 등이 대표적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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