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 누가 이길까
사자 호랑이 |
두 맹수의 '습성과 싸움기술'… 에버랜드 사육사에게 듣는다
주무기 서로 달라… 호랑이는 기습의 명수
사자는 주로 떼로 몰려다녀 호랑이가 열세
에버랜드 권좌는 10년 넘게 숫사자가 차지
동물의 세계에 절대강자는 누구일까? 사자일까, 호랑이일까?
이 물음에 정답은 없다. 야생에서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반면, 호랑이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넓은 영역에 분포하기 때문에 '으르렁' 댈 일이 없다. 하지만,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은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알고 있다. 사자와 호랑이를 같이 키워서다.
일단 평균 체중에서는 사자가 약간 앞서는 수준이지만, 승부에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사자는 수컷 200kg, 암컷 140kg, 호랑이는 수컷 180kg, 암컷 130kg로 사자가 호랑이 보다 크다. 몸놀림은 호각지세다. 사자는 전체 몸무게를 앞 발과 뒷 발 모두에 균형있게 배치해 안정된 자세를 자랑한다. 반면 호랑이는 몸무게를 주로 뒷 발에 싣기 때문에 몸을 빨리 회전할 수 있고 점프력이 월등하다.
주무기도 다소 차이가 있다. 사자는 안정된 자세에서 나오는 묵직한 앞발 스트레이트가 주무기라면, 호랑이는 날렵하고 빠르게 톡톡치는 잽이 있다. 싸움을 할 때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이빨 공격은 둘 다 비슷하다. 날카로운 송곳니는 길이가 3㎝로 깊숙히 살점을 파고 든다.
막상막하 사자와 호랑이의 혈투.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24년 동안 이들의 싸움을 지켜본 정상조 사육사에게서 이들의 싸움기술과 습성을 들어본다.
◆법칙1=사자는 혼자 싸우지 않는다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거의 사자가 이긴다. 사자는 무리 지어 싸우는 반면 호랑이는 항상 혼자 다니기 때문이다"
6일 오후. 동물원 권좌서열 1위인 사자 '아이디'가, 암컷 사자인 '키아라'와 함께 호랑이 서열2위 '호롱'을 공격했다. 싸움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유린이었다. 호랑이는 '호롱'이 하나였고 사자는 둘이었다. 호랑이는 잔뜩 자세를 낮추고 수비 자세를 취했지만 허사였다. '아이디'가 정면을 치고 들어왔고, '호롱'이 이를 막는 사이에 노출된 옆구리를 '키아라'가 앞발로 걷어찼다. '호롱'은 사자의 협공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사자는 야생에서도 1세부터 5세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군집 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강한 동물이다. 시베리아부터 인도의 벵골만까지 넓은 지역에 홀로 떨어져 고독하게 살아가는 호랑이와는 선천적으로 다르다. 하루 평균 사자는 20마리, 호랑이는 13마리 정도가 방사되는데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사자는 2마리 이상 집단으로 호랑이를 공격한다. 특히 사자는 호랑이의 공격을 받으면 날카로운 울음 소리를 내는데, 이 울음소리는 주변의 사자들을 끌어 모으는 신호가 된다. 반면 호랑이는 다른 호랑이가 당해도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법칙2=발정난 암컷 사자가 싸움을 만든다
"사자와 호랑이간의 싸움은 발정 난 암컷 사자가 부추긴다. 일부러 암컷 사자가 호랑이 영역에 침범해 싸움을 일으킨 후 호랑이와 가장 용맹하게 싸운 수컷을 선택한다"
에버랜드 동물원은 4m 높이의 폭포를 중심으로 사자와 호랑이 구역이 양분돼 있다. 이 둘 사이에는 평상시 사육사들이 운전하는 패트롤카가 지나다니고 있다. 하지만, 암컷 사자들이 일부러 이 경계선을 넘어 호랑이를 도발하곤 한다. 5월 27일 발정이 온 암컷 사자 '로즈'는 낮잠 자는 수컷 사자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호랑이 구역으로 넘어갔다. '로즈'는 '아이디', '레오', '여비', '애니카' 등 수컷들을 바라보더니 호랑이 서열 2위 '호롱'의 얼굴을 두툼한 앞 발로 툭툭 건드린다. '호롱'이 순간 몸을 일으켜 대응 자세를 취하자 '아이디'가 '호롱'이를 향해 달려드니 '호롱'은 이내 뒷걸음질을 쳤다. 이날 '로즈'는 용맹한 '아이디'를 선택했다.
◆법칙3=호랑이는 게릴라전에 능하다
"호랑이는 집단으로 움직이는 사자를 정면승부로 이길 수 없다. 호랑이는 조용히 숨어 있다가 사자를 기습 공격하고 빠진다"
11일 낮, 뜨거운 햇살을 피해 호랑이 구역 가까이에 '오로라', '헤라', '하케', '연분이' 등 사자들이 한가롭게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때 2m 높이의 수풀 더미가 움직이더니 갑자기 등장한 '호롱'이 '연분이'의 목 뒤를 가격했다. '오로라'와 '헤라'가 깜짝 놀라 이내 도망쳤고, '호롱'은 '하케'까지 공격해 쫓아냈다.
사자 '레오'는 2일과 10일 호랑이 서열 1위 '세강'에게 두번이나 기습공격을 당했다. 항상 '레오'는 버드나무 가지 아래 비스듬한 언덕 위에 누워 쉬기를 좋아하는데, 호랑이 '세강'이 버드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레오'를 공격했다. '레오'는 사자 무리에서 '왕따' 같은 존재여서 다른 사자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정 사육사는 "사자와 호랑이를 싸우게 하면 동물 학대에 해당된다"며, "사육사들이 작은 차를 타고 순찰하며 싸움을 말리곤 한다"고 말했다.
[이재준 기자 promej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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