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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 시탕 (주간동아)

falcon1999 2008. 4. 25. 09:53
주간동아

수천 년 은둔의 도시 드디어 세상과 소통하다

기사입력 2008-04-23 08:34
[주간동아]

비밀 첩보기관 ‘IMF(Impossible Mission Force)’의 특수요원 이단 헌트는 악명 높은 무기 밀매상 오웬 데비언의 뒤를 쫓는다. 이를 눈치챈 오웬은 이단의 아내를 인질로 잡는다. 그러고는 이단에게 ‘토끼발’을 가져오지 않으면 아내를 죽이겠다는 통첩을 보낸다. 자칫 아내를 잃을 수도 있는 위기상황, 하지만 이단은 오웬의 소굴로 뛰어들어 그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단이 오웬과 최후의 대결을 벌이던 곳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긴다. 운하가 지나는 마을, 운하 가까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집들과 한가로이 운하를 가로지르는 배들. 푸른 눈의 사람들은 ‘토끼발’을 차지하기 위해 건곤일척의 접전을 벌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런 싸움질에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3’가 아니었다면 이곳 사람들은 바깥세상과 영영 담을 쌓고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션 임파서블 3’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장소가 바로 중국 시탕(西塘)이다.

사람들은 중국이라는 단어에 ‘운하’를 같이 묶으면 대번 쑤저우(蘇州)나 항저우(杭州)를 떠올릴 것이다. 쑤저우, 항저우는 일찍부터 운하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만들어간 고장이다. 그래서 옛말에 “위에는 하늘나라가,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시탕이 보여주는 매력은 결코 쑤저우나 항저우에 뒤지지 않는다. 또 시탕은 ‘소항’ 못지않게 오랜 내력을 자랑한다. 시탕에 사람이 거주한 시기는 춘추전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탕 곳곳에 있는 운하를 연결하는 조그만 다리들은 가깝게는 명나라, 멀게는 송나라 때 만들어졌다. 그다지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이 다리들은 고도(古都) 시탕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오랜 은둔의 세월을 보낸 시탕, 하지만 ‘미션 임파서블 3’는 시탕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확실히 할리우드는 세상 사람들이 전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드러나게 하는 데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 영화 속에선 한가롭기만 했던 거리에 이제 기념품 상점과 숙박시설, 음식점들이 제법 들어섰으니 말이다. 비록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화장실도 신식 설비로 바뀌었다. 실제 ‘미션 임파서블 3’ 이후 시탕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먹을거리를 만들어 파는 시탕 시장의 아주머니(왼쪽)와 시탕 운하의 고즈넉한 풍경.

영화 ‘미션 임파서블 3’ 촬영 이후 관광객 발길 쇄도

하지만 이곳을 휘감고 있는 공기는 여전히 고즈넉하다.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부대끼다 보면 돈벌이 욕심도 날 테고 경우에 따라선 짜증도 날 법하지만 시탕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느긋하기만 하다. 이방인을 대하는 할아버지의 해맑은 미소, 관광객에게 먹을거리를 건네는 시장 아주머니의 넉넉한 표정, 말없이 할아버지의 손톱을 깎아주는 할머니, 길거리에 널린 먹을거리와 마을을 가로지르는 운하….

이미 시탕을 찾은 여행객들은 쑤저우나 항저우에 비해 시탕이 훨씬 정감 있는 고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영화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답을 구해본다. 이단이 속한 정보기관은 신참요원 린지를 오웬에게 잠입시킨다. 하지만 오웬은 곧 린지의 정체를 알고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다. 린지의 훈련교관이었던 이단은 “그녀는 참신한(brand new) 요원이었어” 하며 안타까워한다.

시탕에서 느껴지는 정겨움도 이 ‘참신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탓에 ‘소항’은 세파에 닳은 지 오래다. 특히나 쑤저우는 지금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정부가 급속하게 추진한 공업화의 폐해를 한 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탕은 ‘참신’하다. 시탕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 다음, 그러니까 영화가 개봉된 2006년 이후부터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각처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시탕의 거리는 북적이지만 시탕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오랜 기간 이어져온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이제야 영화의 느낌이 제대로 다가온다. 영화 주인공들이 거리 한복판에서 난투극을 벌여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스크린 속의 사람들. 시탕 사람들에게 서양사람들의 난투극은 그 사람들이 속한 세계에서나 의미를 갖는 일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션 임파서블 3’ 제작진이 마지막 장면의 무대로 시탕을 선택한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해 보인다.

‘미션 임파서블 3’에서 이단은 아내에게조차 자신을 숨겨야 하는 첩보원이다. 그럼에도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결혼을 한다. 절친한 동료인 루터는 이단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보통의 인간관계?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아.”

시탕도 마찬가지다. 최근 시탕에서 일고 있는 변화는 이 고장 사람들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시탕 사람들은 느긋하게 삶을 꾸려나간다. 이런 시탕의 분위기를 휘감으며 운하는 유유히 흐르고 또 흐른다.



글·사진 = 지유석 culpp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