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을 빚어온 내력있는 명주 ‘호산춘’
전통있는 술에는 맛과 향뿐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뛰어난 맛과 향은 시대를 더해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에 기대 전통주 또는 가양주라는 이름을 얻는다. 술은 사람이 빚고 마시니 사람의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문경의 산북에는 대대로 500년은 살아온 집안이 있다. 오랜 집안 내력과 어깨를 견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호산춘이라 불리는 술이다.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이 대물림하며 빚어낸 호산춘 이야기를 안주 삼아, 500년 향기 가득한 호산춘 한 잔 입안에 머금어 본다.
호산춘 마신 상주목사, 밤에 요강을 들이키다
호산춘은 문경의 장수 황씨 집안에서 대대로 빋어온 술이다.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 있는 장수 황씨 고택은 방촌 황희 선생의 직계 후손이 정착해 500여 년 동안 대대로 살아온 곳이자 호산춘이 빚어진 곳이다. 호산춘이라는 술이름이 제법 독특하다. 술 이름에는 ‘술’자 또는 ‘주酒’자가 붙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호산춘에는 ‘춘’자가 붙었다. 무슨 연유일까? 순우리말로 술 또는 한자로 주는 술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만, 한자로는 덧술하는 횟수에 따라 한 번 더 덧불하면 두, 세 번 덧술하면 주라고 한다. 세 번 덧술한 술은 깊고 그윽한 맛을 내고, 주도를 높인다하여 주를 고상하게 춘주라 부른다. 술이름에 ‘춘’이 붙는 이유는 여기서 유래하며, 술 가운데 가장 좋은 특품을 의미한다. ‘춘’은 그만큼 격조 높은 술에만 붙는 글자였다. 서울의 약산춘, 평양의 벽향춘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문경의 호산춘만이 춘주의 명맥을 잇고 있는 셈이다.
황희 정승의 후손이 빚는 500년 역사의 가양주
장수 황씨 고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호산춘 간판이 초라하게 서 있다. 호산춘을 빚는 양조장이다. “술이 필요하면 전화 주십시오”라는 안내판이 낡고 허름한 대문에 붙어 있다. 부유한 집안과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던 옛날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의 호산춘은 필요에 따라 빚는 술이라 양조장은 그리 크지 않다. 호산춘은 장수 황씨 22대 종송인 황규욱 씨가 빚는다. 호산춘은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아니다. 지난 7월에도 빚어낸 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술독을 엎었다. 그전에 빚었던 술은 떨어지고, 새로 나올 술을 엎어버렸으니 당연히 술이 없을 수 밖에. 결국 ‘술이 품절되었다’는 안내문구가 대문 한 귀퉁이에 붙고 말았다. 황규욱 씨에게 그동안 들인 재료와 정성이 아깝지 않느냐고 물으니 “좋은 술이 나오지 않으면 버리는 건 당연하다”며, 술맛을 제대로 지켜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자 명예라는 말도 덧붙였다.
호산춘 제조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솔잎이다. 양조장 뒷산에서 따온 솔잎을 일일이 손질해 담아둔다. 솔잎은 피를 맑게 하고 정신을 온전하게 해주는 약리효과가 있는데, 호산춘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 중 하나다. 은은한 솔 향이 술에 스며들고 술을 짤 때 완충역할까지 한다고 하니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호산춘 제대로 즐기기
호산춘은 전화로 문의해보고 가는 것이 좋다. 필자도 지금은 볼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도 막무가내로 찾았다가 이제 막 익고 있는 술만 보았을 뿐 호산춘 한 잔 맛보지 못했다. 호산춘을 빚는다는 소식에 다시 찾았을 때 이제 막 병에 담긴 옅은 갈색의 호산춘을 맛볼 수 있었다. 솔 향이 짙게 퍼지면서 목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기에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셨더니 세잔 째 이르러 술이 확 올라옴을 느낄 수 있었다. 호산춘을 마시다 보면 자신의 업무도 잊은 채 마신다하여 망주라더니 이러다 취재도 못 하겠다 싶어 맛보기를 그만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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