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1001191743365&code=900305
[허시명의 우리술 이야기](3)평양 명주 감홍로의 맥
유명한 술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을 꼽을까? 술을 논하다보니, 어떤 술이 제일 좋더냐고 사람들이 자꾸 내게 물어온다. 변덕스럽게 내 마음과 혀는 계절따라 달라지고 연년마다 달라진다. 술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마시고 나면 사라지고 마니 어떤 것 하나를 꼬집어 말하기가 난처하다. 엊그제도 자꾸 내게 물어오는 이가 있어서, 대뜸 감홍로라고 말하고 말았다.
감홍로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이는 아마도 평양 기생들이었을 것이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평양 3대 명물로 냉면, 골동반, 감홍로를 꼽았다. 모두가 평양기생이 차려낸 음식상에 올랐던 품목들이다. 감홍로가 평양을 대표하는 소주였다면, 조선을 대표했던 소주라고 확대해석해도 그릇되지 않을 것이다. 소주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곳이 북쪽이고, 평안도였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내가 맛본 감홍로는 2년 숙성된 제품이었다. 우리술에는 숙성 개념이 희박하다. 오래 숙성되었다고 자랑하는 술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런데 2년 숙성이라니, 그 정도라도 내게는 반가운 정보였다. 감홍로를 빚은 이기숙씨(54)에게 물어보니, 일본 수출 물량으로 두어해 전 빚어둔 술이라고 했다. 술은 황금빛을 띠는데, 약재 향이 또렷하지만 삼키고 나면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다. 도수가 40도인데도 코끝을 튕기는 듯한 사나운 맛이 없고 부드러웠다. 숙성의 힘 때문에 얻은 부드러움이었다.
감홍로는 어떤 술인가? 옛 문헌 속에 그 명성은 자자했다. 최남선은 조선 3대 명주(이강고, 죽력고, 감홍로)로 꼽았고, 이규경은 조선 4대 명주(평양 감홍로, 한산 소국주, 홍천 백주, 여산 호산춘)로 들었고,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서 평안도 지방에서 알아주는 술로 감홍로와 벽향주가 있다고 했다.
감홍로를 빚는 이기숙씨는 아버지 이경찬씨(1993년 작고)로부터 감홍로를 배웠다. 이경찬씨는 문배주로 1986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된 인물이다. 혼인이 늦었던 이기숙씨는 아버지가 문화재 지정을 받기 위해 시험술을 만들어낼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술을 빚었다. 아버지는 문배술과 감홍로 중에서 어느 것을 문화재로 신청할까 고심하다 약재가 들어가지 않은 술을 선택했다고 한다.
감홍로는 좁쌀누룩과 멥쌀 고두밥으로 빚어 두 번에 걸쳐 증류한 뒤에 8가지 약재를 넣어 침출시켜 완성한다. 장에 좋다는 용안육, 정기를 북돋아준다는 정향, 비타민이 풍부한 진피, 풍을 막아준다는 방풍, 그리고 향긋한 계피, 활달한 생강, 달콤한 감초, 붉은 지초가 들어간다. 이기숙씨는 인간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먹을거리로 술과 마약이 있는데, 마약은 만들 수 없으니 술을 만든다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모든 술에는 독이 있으니, 술을 빚으려면 독기운이 적은 술을 빚어야 하는데 그게 감홍로라 했다.
감홍로는 넓게는 홍주의 범주에 들어있다. 홍주는 술 색이 붉어서 이름에 ‘홍’자가 들어간 술을 일컫는다. 소주류로 진도홍주, 감홍로, 관서감홍로, 내국홍로방이 있고 발효주로 천태홍주방, 건창홍주방, 홍국주가 있다. 붉은색을 내는 데는 지초(또는 자초)라는 약재를 쓰거나, 붉은 누룩인 홍국을 쓴다. 홍국을 써서 만든 전통술은 사라져버렸고, 지초를 사용한 술들만 진도홍주와 감홍로가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기숙씨에게 술을 빚는 데 무엇이 가장 어렵냐고 물어보니,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라고 했다. 술을 먹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상표에 적힌 재료나 도수나 성분에 대해서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술 속에 어떤 역사가 있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이 가격으로 책정되었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평양 최고의 술이자 조선 최고 증류주로서 위용을 자랑하던 감홍로조차 전통의 단절로 속절없이 무명의 설움을 겪어야 하니,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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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숙씨(오른쪽)와 남편 이민형씨가 경기 파주의 감홍로 제조장에서 감홍로에 들어가는 조누룩을 만들고 있다.
새해 들어 내가 맛본 감홍로는 2년 숙성된 제품이었다. 우리술에는 숙성 개념이 희박하다. 오래 숙성되었다고 자랑하는 술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런데 2년 숙성이라니, 그 정도라도 내게는 반가운 정보였다. 감홍로를 빚은 이기숙씨(54)에게 물어보니, 일본 수출 물량으로 두어해 전 빚어둔 술이라고 했다. 술은 황금빛을 띠는데, 약재 향이 또렷하지만 삼키고 나면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다. 도수가 40도인데도 코끝을 튕기는 듯한 사나운 맛이 없고 부드러웠다. 숙성의 힘 때문에 얻은 부드러움이었다.
감홍로는 어떤 술인가? 옛 문헌 속에 그 명성은 자자했다. 최남선은 조선 3대 명주(이강고, 죽력고, 감홍로)로 꼽았고, 이규경은 조선 4대 명주(평양 감홍로, 한산 소국주, 홍천 백주, 여산 호산춘)로 들었고,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서 평안도 지방에서 알아주는 술로 감홍로와 벽향주가 있다고 했다.
감홍로를 빚는 이기숙씨는 아버지 이경찬씨(1993년 작고)로부터 감홍로를 배웠다. 이경찬씨는 문배주로 1986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된 인물이다. 혼인이 늦었던 이기숙씨는 아버지가 문화재 지정을 받기 위해 시험술을 만들어낼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술을 빚었다. 아버지는 문배술과 감홍로 중에서 어느 것을 문화재로 신청할까 고심하다 약재가 들어가지 않은 술을 선택했다고 한다.
감홍로는 좁쌀누룩과 멥쌀 고두밥으로 빚어 두 번에 걸쳐 증류한 뒤에 8가지 약재를 넣어 침출시켜 완성한다. 장에 좋다는 용안육, 정기를 북돋아준다는 정향, 비타민이 풍부한 진피, 풍을 막아준다는 방풍, 그리고 향긋한 계피, 활달한 생강, 달콤한 감초, 붉은 지초가 들어간다. 이기숙씨는 인간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먹을거리로 술과 마약이 있는데, 마약은 만들 수 없으니 술을 만든다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모든 술에는 독이 있으니, 술을 빚으려면 독기운이 적은 술을 빚어야 하는데 그게 감홍로라 했다.
감홍로는 넓게는 홍주의 범주에 들어있다. 홍주는 술 색이 붉어서 이름에 ‘홍’자가 들어간 술을 일컫는다. 소주류로 진도홍주, 감홍로, 관서감홍로, 내국홍로방이 있고 발효주로 천태홍주방, 건창홍주방, 홍국주가 있다. 붉은색을 내는 데는 지초(또는 자초)라는 약재를 쓰거나, 붉은 누룩인 홍국을 쓴다. 홍국을 써서 만든 전통술은 사라져버렸고, 지초를 사용한 술들만 진도홍주와 감홍로가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기숙씨에게 술을 빚는 데 무엇이 가장 어렵냐고 물어보니,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라고 했다. 술을 먹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상표에 적힌 재료나 도수나 성분에 대해서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술 속에 어떤 역사가 있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이 가격으로 책정되었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평양 최고의 술이자 조선 최고 증류주로서 위용을 자랑하던 감홍로조차 전통의 단절로 속절없이 무명의 설움을 겪어야 하니,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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