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류한 것/스크랩

[스크랩] [나는 가수다] 온정주의와 원칙주의 사이의 중심이동

falcon1999 2011. 3. 29. 15:26

 

<나는 가수다> 재도전 사건은 한국인의 집단주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식, 감성주의, 조화주의, 서열의식(‘속담으로 보는 한국인의 특성참고)이 만들어낸 합작품입니다. 국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사실은 우리의 사생활에서도 생활 문법처럼 작용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주요 인물들과 MBC의 대처를, 한국인의 특성을 기준으로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한국문화

특징

우리의식

무리 짓기를 좋아합니다. 내집단 사람에게는 잘해주지만, 외집단 사람에게는 배타적으로 대합니다. 지연, 학연의 연고주의를 탓하지만, , 동창회도 같은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남이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익숙한 문구입니다.

감성주의

내집단 관계를 이루는 화폐는 ()’입니다. 사업 계약이 계약서가 아니라 술집에서 이뤄지는 것도 친해져야 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꼭 공식적 행사를 하고 나서는 뒤풀이를 합니다. ‘미운 정 고운 정은 번역하기 애매한 한국인 특유의 자랑스러운 문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는 아이 떡 주는것처럼 정 앞에서 원칙은 쉽게 무너집니다.

조화주의

집단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기 때문에 집단의 조화를 깨뜨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글쎄요라고 군말을 붙이고, 확실한 사실도 추측성 표현인 내일이 좋을 것 같아요.’로가 약화시키는 언행에도 드러납니다. 체면을 차리고 눈치를 봐야하고, 의례성 표현도 많습니다. 이를 해석하지 못하는 외국인은 한국인이 이중적이라고도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닙니다. 원칙대로 하면, 인정머리 없다는 소리 듣기 일쑤입니다.

서열의식

초면에 나이와 학번을 묻습니다. 서열을 지우고 나면 관계가 편해집니다. <12>에서 엄태웅이 투입되면서 이수근과 나이를 맞추는 것, <무한도전>에서 정준하와 박명수가 나이를 맞추는 것을 외국인에게는 색다른 현상입니다.

 

 

1. 김제동 

 

김제동이 크리넥스 한 통을 다 썼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밑도 끝도 없이 마녀사냥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성보다는 눈앞의 측은함부터 보는 감성주의의 큰 부작용입니다. 김제동에게 향하는 화살은 비난이 아니라 비판입니다. 그가 재도전을 주장하지 않았으면 김건모를 위로하며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을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의 원흉이었습니다. 눈물을 쏟기 전에 사과부터 했어야 했습니다.

 

김영희 PD의 큰 실수는 누군가 탈락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에 대한 형식을 정해 놓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큰일을 당하면 어찌할 줄 모른다.’라고 합니다. 이때, 정해진 형식이 있으면 충격은 그 형식을 따라 표현됩니다.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한다든지, 초상집에서 곡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김건모의 탈락이 발표되었을 때, 그 누구도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아무 말도 못 꺼냈습니다. 어찌할 줄 모를 때, '돌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재도전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어휘가 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재도전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김건모는 가수 최고참이었고, 나이 또한 가장 많았습니다. 후배 가수 중 누군가 그건 원칙에 위배 되지 않습니까?’라고 한다면, 한국에서는 눈치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히고 왕따 당하기 십상입니다. 가요계라는 좁은 바닥 안에서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로 가는 게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김제동, 감성주의에 휘둘려 원칙의 핵심을 어긴 당신이 잘못했습니다. 평소에 소신 있고 원칙을 지키는 이미지를 구축했던 만큼 대중의 배신감은 더 큰 법입니다. 사과하고 하차하면 됩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화가 나지만 당신이 질 책임은 그 정도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울 필요는 없습니다.

 

 

2. 김건모

 

김건모에게도 많은 비난이 꽂혔지만, 사실 김건모에게도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김건모가 깽판을 부려 방송화면은 재촬영 된 것이라는 말도 있던데, 본 포스트에서는 방송화면으로 확인된 것만 언급하겠습니다.) 재도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분위기는 이미 전환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여론이 원칙을 지켜야지 그걸 넙죽 받아 먹냐?’라고 하던데, 그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을 한국 사람은 얼마나 될지 되묻고 싶습니다.

 

립스틱 이야기는 결국 체면을 차리기 위한 핑계입니다. 김건모는 실력에 있어 체면을 차릴 필요가 있었고, 김영희 PD도 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습니다. 서열 사회에서 아랫사람 앞에서의 체면 손상은 가장 치명적인 일이며 김건모는 이뤄 놓은 것이 많아서 지켜야 할 체면도 많았습니다. 김건모를 제외한 나머지 가수들의 앨범 판매량을 다 합쳐도 그의 전성기 판매량에 못 미칠 인기는 김건모가 지켜야할 체면의 크기였던 것입니다. 후배들도 그것을 알기에 그를 붙잡았고, 김건모 입장에서는 후배들이 알아서 챙겨주는 기회를 잡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행위였습니다.

 

물론, 그게 옳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입으로 원칙에 어긋남을 말해 놓고도(그때까지는 멋있었습니다.) 끝내 후배들 핑계로 재도전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것도 치사하게 용기로 포장해서 말입니다. 그가 좀 더 큰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너무 평범한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3. 이소라

 

가수는 예술인입니다. 예술인에게 풍부한 감성은 큰 자산입니다. 그런데 TV에 나오는 순간, 방송인입니다. 방송인 노홍철은 노랑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데도 약속을 지키려고 그 자리에서 삭발을 감행했습니다. , 아니군요. 가수 김윤아는 남자 친구가 돌연사한 다음 날도 웃으면서 공연했다고 했으니 감성의 문제는 아닌가 봅니다.

 

 

4. 김영희 PD

 

김영희 PD도 김건모처럼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영석 PD안 됩니다.’와 김태호 PD동거동락 특집을 예로 들며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12><무한도전>은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멤버쉽이 형성되어 있어 있었고, 멤버들 사이에 약속 이행에 대한 학습도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의 경우는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렵게 모신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입니다. 그들이 하나의 강력한 여론을 형성했는데 단칼에 거절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는 한국인의 측면에서는 지극히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이상, 중심을 잃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이어지는 그의 변명들이었습니다. <나는 가수다>의 본질은 예능입니다. 수많은 대중은 일요일 저녁 TV 앞에서 예능을 기대하지 가요 프로그램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탈락은 예능적 장치일 뿐이고 멋진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니요? 프로그램 홍보를 탈락에 맞춰 두었고, 프로그램 내내 탈락에 긴장하는 가수들의 모습을 부각시켜 놓고서 말입니다. 대중은 원칙을 호도하는 변명에서 지긋지긋한 정치인을 보고 말았는지도 모릅니다.

 

 

5. MBC의 대처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집단 안의 관계 압력에 의해서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정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책임을 질만한 사람들이 핑계를 대는 것을 흔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유야무야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MBC의 대처를 환영합니다. 다소 과격한 대처인 것도 같지만 시청자의 비판을 받아들였고, 문제가 터진 후에 책임을 졌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MBC는 최소한 시청자와의 약속이라는 방송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6. 그리고 가수들

 

재도전 이후 그들이 김건모를 붙잡는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명이 탈락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는데 그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감동적인 공연이었다.’는 변명은 구차합니다. 그리고 ‘<나는 가수다>의 출연이 득보다 실이 많다.’, ‘무대에서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언론 플레이도 그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웃기는 일이 아니라 노래 잘 부르는 일로 얼굴과 실력을 알리는 일이 왜 실이 많은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방송 직후 검색어와 음원 차트를 휩쓸게 되는데도 말입니다. , 이 땅의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 중에 즐기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프로 가수라면 긴장하면서 밥 벌어 먹는 것 당연합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의 중량이 예전보다 무거워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영희 PD의 변명 중에 실제로 떨어트리면 가혹하다는 비난도 있을 것 같았다.’는 아마 그의 전성기 즘에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시대가 변하고 있나 봅니다.

 

거짓말을 해대는 정치인들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왜 일개 예능에 목숨을 거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 문법이 묻지마식 온정주의에서 탈피한다면 정치도 그렇게 변할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이렇게 변하고 있는 한국인의 특성을 MBC처럼 발빠르게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정(情)과 원칙 사이의 중심 이동에서 오는 진통은 멋진 프로그램의 산고라고 생각하며, 5월을 기다립니다.

 

쓰고 편집하는데 4시간, 추천하는 데 1^^

여러분의 [추천/구독]이 백수의 빛이 됩니다.

 

출처 : 잉여 대통령
글쓴이 : 히라노도스토루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