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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월] 양복 재단 30년 김익주씨

falcon1999 2010. 6. 12. 17:47

출처: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4838&yy=2009

 

[사람과 세월] 양복 재단 30년 김익주씨
"19살 견습공으로 시작, 한 4만벌 되나요?"

 
 
 
한 땀 한 땀 뜨는 바늘 끝에서 맞춤복의 맵시가 결정된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땡그랑’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리면 점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 나와 손님을 맞이한다. 재단사가 손님의 몸치수를 재고, 치수대로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보조 재단사는 재단사가 그려준 그림대로 원단을 자른다. 봉제사는 종일 바느질 하느라 고개를 들 틈이 없다. 한쪽에서는 다림질 김이 종일 솟아오른다. 보조 재단사는 어깨너머로 재단사의 손놀림을 익히고, 점원은 또 보조 재단사의 눈치를 살피며 하나 둘 일을 배운다.

맞춤 양복이 전성기를 누리던 1980년대 초까지 양복점 풍경이다. 요즘은 디자이너(재단사)이자 가게 주인이 이 모든 일을 혼자 한다.

1945년 정순도씨가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한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영진 양복점(대표 정은녕·대구시 중구 남일동

☎(053)-255-6110). 대구에 현존하는 양복점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영진양복점의 대표 디자이너 김익주(48)씨는 1980년 견습공으로 양복점에 취직, 지금까지 3,4만 벌을 재단했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그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다. 공부해서 성공하라면 자신 없었지만 무엇을 만드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1979년 대한복장학원에서 양복재단을 배웠고 반월당에 있던 보궁라사에 재단 보조로 취직한 것이 첫발이었다. 보궁라사에서 2년, 동진 양복점에서 2년, 이 대감 양복점에서 1년 근무하고 1985년 영진 양복점 재단 보조로 들어와 지금까지 왔다. 영진 양복점에서는 7개월 정도 재단보조 일을 했고, 곧 정식 재단사가 됐다.

“80년대 초에는 견습 재단사라도 수입이 좋았어요. 당시 7급 공무원이었던 형보다 제 수입이 더 많았으니까요.”

일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이름난 양복점은 연간 2천벌씩 만들곤 했다. 옷의 미적 감각보다 튼튼함과 제 날짜 납품이 관건이었다. 날마다 일이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출근이 두려울 정도였다.

양복 만들기 30년. 이제는 지겨울 만도 하지만 김익주씨는 여전히 신참 같다. 좋은 옷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매장에 직접 찾아가서 입어본다. 일부러 구해서 뜯어보고 안을 세세하게 살펴보기도 한다. 매년 9월 서울에서 열리는 맞춤 양복 패션쇼에 작품 출품도 빼놓지 않는다. 패션 잡지를 통해 유행을 살피고,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를 민감하게 체크한다. 그런 덕분에 손님들로부터 감사 인사도 많이 받았고, 여러 대회에서 상장도 받았다. 30년 경력의 중견이지만 아직도 손님이 “당신이 만든 양복이 최고다”는 말이 가장 기쁘다.

◆ 맞춤양복, 가격과 제작시간은?

맞춤양복은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남성 멋의 최고봉, 명절이나 기념일의 필수 복장이었다. 요즘은 양복 말고도 멋낼 옷이 많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까지 신사라면 반드시 양복을 입었다. 추석이나 설 때 고향이나 친척집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양복을 입었다. 양복이 없는 사람들은 빌려서라도 입었다. 양복은 객지로 나가 성공한 사람의 상징이었다.

그런 만큼 당시에는 양복 원단이 큰 선물이었다. 혼사 때는 으레 한 집안 식구들이 모두 옷 한 벌씩 해 입을 수 있는 예단이 오고갔다. 어떤 집안에 혼례가 있으면 보통 10벌 정도 단체 주문이 있곤 했다.

원단이 비싸던 그 시절, 양복점 마다 원단 보관이 큰 걱정거리였다. 도둑을 걱정해 양복점에서 잠을 자는 주인들도 꽤 많았다. 양복점이 워낙 많던 시절이었고, 원단을 훔쳐 싼값에 파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원단 선물하는 사람이 드물고, 원단 선물이 들어왔다고 해서 곧 옷을 맞추는 사람도 드물다.

맞춤양복의 인기는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주춤하기 시작하더니 1980년대 중반부터 결정적으로 흔들렸다. 서구의 유행과 기술, 대기업의 홍보를 등에 업은 기성복이 쏟아진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였고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맞춤 바느질’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기계의 박음질’에 밀려났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양복점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주춤하던 맞춤 양복이 최근 다시 각광받고 있다. (사)한국 맞춤양복 문화협회 대구시 지부에 따르면 현재 대구 시내에 양복점은 70여개다. 전성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숫자지만 최근 몇 년 사이 20, 30대 젊은 층이 많이 개업했다. 20, 30대가 경영하는 양복점이 15개쯤 된다. 3, 4년 전부터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데다 기성품에 지루해진 고객들도 점점 늘어난 때문이다.  

양복점을 찾는 손님의 나이도 다양하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40대 후반에서 60, 70대가 선호했는데, 지금은 30, 40대 고객이 많이 찾아와 잉글랜드 스타일로 몸에 딱 맞춰 입는 경우가 많다.  

맞춤양복은 특히 단골이 많다. 한번 맞춤양복을 입어본 사람들은 좀처럼 기성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진 양복점 단골 중에는 50년 이상 꾸준히 찾아오는 90세 이상 된 손님도 있다. 김익주씨는 “중년의 아버지가 이제 성년이 된 자식에게 결혼 선물이나 취직 선물로 자신의 단골집인 우리 가게를 소개해 줄 때 참 행복하다”고 했다.    

◆ 맞춤양복의 매력

“허리는 이렇게, 어깨선은 이렇게, 뒤태는 이렇게, 단추 위치는 이렇게….”

양복점을 찾는 20대와 30대 고객 중에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양복 사진을 구해와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외국의 잡지나 매장에서 본 양복 모양에 자신의 취향을 가미해 주문하는 것이다.

맞춤양복의 매력은 자신의 몸에 꼭 맞게, 또 취향대로 만들어 입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다. 같은 가슴둘레라도 가슴이 나온 사람이 있고, 들어간 사람이 있다. 같은 허리둘레라도 배가 나온 사람, 옆구리가 나온 사람 등 다양하다. 같은 170cm의 키라도 양쪽 어깨 높이와 크기, 굵기 등이 다르고, 신체의 뼈대 굵기가 다르다. 맞춤형 양복은 체형을 살려서 신체적 결함은 가려주고, 맵시를 돋보이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맞춤복은 기성복과 달리 보편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개인의 체형과 취향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만들기 어렵다. 같은 한 사람을 두고도 본인은 옷이 작다고 말하고, 함께 온 아내는 옷이 크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또 바지를 다소 길게 입는 사람, 짧게 입는 사람, 넓은 품을 선호하는 사람, 좁은 것을 선호하는 사람 등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신체 치수뿐만 아니라 ‘마음의 치수’까지 잴 줄 알아야 한다.

맞춤양복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어깨선, 허리선, 목깃, 단추 위치다. 이 부분을 잘 잡아야 옷에 맵시가 나고 유행에 맞다. 매년 (사)한국 맞춤양복 문화협회에서 올해의 ‘유행’에 대한 지침을 정기간행물을 통해 알려줌으로써 현장의 디자이너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성복과 비교해 맞춤복의 가장 큰 장점은 1년 혹은 2년을 입은 뒤에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체형이 다소 바뀌거나 유행이 약간 변했을 때 고쳐 입을 수 있다. 맞춤복은 제작할 때 천의 여유를 두어 기성복보다 훨씬 자유롭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 가격과 만드는 시간

흔히 맞춤양복은 비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류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요즘 20대와 30대 초반 젊은이들을 위한 30만∼50만원 대 중저가 양복도 많다. 일반적인 가격은 50만원 대부터 250만원까지로 가격은 옷감에 따라 결정된다.  

“100만원짜리 맞춤양복이면 괜찮은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0만원 넘으면 고급에 속합니다. 물론 그 이상 나가는 옷도 있습니다. 어떤 옷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격은 다릅니다. 수공료는 같다고 보면 됩니다.”

김익주씨는 “맞춤양복은 한번 입어본 사람들이 또 입기 때문에 손님들이 가격을 잘 알고 있다” 며 “양복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만큼 비싸게 부른 다음 깎아주는 일은 없다”고 했다.

양복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손님과 재단사는 주문, 가봉, 납품을 위해 3번 만나야 한다. 요즘은 출장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 주문과 가봉할 때만 손님이 찾아오고 납품은 배달로 하는 경우도 많다. 양복 한 벌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시간이다. 하루 8시간 작업한다고 볼 때 4일 가까이 걸리는 셈이다. 이는 다른 주문 분량이 없다고 가정할 때이며, 실제로 손님이 양복을 주문하고 받아 입을 때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여성복의 경우 디자인 학원이 있지만 남성복 학원은 거의 사라졌다. 대학의 의상 디자인학과에서 가르치기는 하지만 전반적이고 기초적인 과정이므로 실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래서 양복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며 양복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하고 돌아간다. 기성복 공장의 경우야 특정한 분야의 업무만 익히면 되지만 맞춤양복의 경우 치수 재기, 체형 파악하기, 디자인, 재단, 봉제 등 전 과정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숙련하는 데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다.  

그래서 젊은 디자이너는 드물다. 정통 양복점의 경우 각 가게마다 기술자가 있지만, 최근 젊은 층이 운영하기 시작한 양복점의 경우 손님의 몸치수를 재고 원단을 선택한 후 제작은 공장에 주문하는 형태가 많다. 가게에서 직접 제작하지 않는 방식인 것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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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