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바원(東巴文)을 배우다
(사진 45) 똥바 상형문자가 들어간 시(詩) “피성대월(披星戴月)”
윗 사진은 춤을 추다가 잠깐 쉬고 있는 나시주 부녀자들이다. 아래 그림의 흐릿한 한자는 바로 뒤에 있는 상형문자와 같은 뜻이다.
나시주는 새파란 하늘을 보고 생활해서인지 파란색을 좋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옷에도 하늘빛을 담은 파란색이 꼭 섞인다. 춤추는 나시주 부녀자들의 두건과 앞치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상이 떠오른 시인이 있었나 보다.
별 () 과 달 () 이 나시 여인 옷에 살며시 내려앉았네.
하늘 끝이 지척이련가, 여기서 손 () 을 뻗으면 천당에 닿을 듯한데,
하늘 () 과 땅 () 이 사람을 보우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천지 적막을 따습게 하는 걸까?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인성이랄지 감성은 변치 않는 게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각을 상형문자로 표현하니 똥바 문자에 대한 흥미가 더욱 일어난다. 이참에 조금만 배워볼까?
(그림 51) 사랑하다(愛)
나를 만나기 전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지 마소
앉아 있는 두 사람 중에 왼쪽이 남자이고, 오른쪽이 여자다. 중간의 P자는 독음기호이기도 하지만 바늘의 의미이기도 하다. 바늘은 두 사람 간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깊이 찌르면 정이 깊어 감미롭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고통스럽기도 하다. 바늘의 거리는 바로 애정의 거리인데 서로 간에 경외와 관심이 필요하다. 한자(漢字)라면 남과 여가 함께 있으니 좋을 호(好)가 되나, 똥바원에서는 남여가 함께 하는 것은 단순히 “좋음”이 아니라, “사랑”이다.
나시 사람들은 애정을 신앙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일 함께 할 수 없다면 서로 애정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민족이다. 구전되는 옛이야기에도 흔히 나오는 이야기다. 나시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면 그들은 좋은 술과 음식과 옷을 사서는 풍광이 수려한 위롱(玉龍)설산 아래로 가서 하룻밤을 꼬박 노래와 술로 지샌다. 날이 밝으면 깨끗하게 차려입고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천국1)으로 향한다. 말하자면 “순정(殉情)”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림 52) 나(我)
혼자 서 있는 개인이 아니라 남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자아를 표현한 듯.
이 그림은 한 사람이 자기를 가리키고 있다. 이는 남에게 자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을 본 적이 없느냐고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듯 하다. 사고를 통해 나시 사람들도 강렬한 자아의식을 드러낸다. 그릇된 자기 고수가 아니라 자신감의 발현이요, 주변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는 것이다. 여유롭게 바깥세상으로부터 전해지는 문화와 문명을 이용함과 동시에 나시 민족 특유의 훌륭한 문명은 철저히 계승해야 하는 것이다.
소수민족일수록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소아병적인 자신을 고수하려 들 것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숙여 사색하매 늘 자신에게 되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래야 나시 민족은 영원할 것이라.
(그림 53) 웃다(笑)
웃음은 마음을 여는 표시이고, 그것은 마음의 긴장을 푸는 것이요,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행위다.
사람들은 마음 상할 만한 일을 잘 얘기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즐거움이 순식간에 쉽사리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시 사람들은 항상 어떤 일을 하는 때건 간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들은 들뜬 것 마냥 큰소리로 떠들고 웃으며 희색이 만면하다. 논이나 밭일을 할 때는 노래와 함께 한다. 일이 없을 때는 밤새워 새벽녘까지 노래하고 춤춘다. 똥바 문자에서 “즐거움”은 두 송이 꽃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다. 흔히 얘기하는 행복 바이러스처럼 즐거움은 옆 사람을 감염시키는 추동력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웃음소리를 통해 더욱 쉽게 공유된다.
기실 웃음의 파도는 곧 수그러들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고 간에 항상 즐거움의 파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웃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그림 54) 아름답다(美)
영원한 봄날, 햇살, 꽃송이는 항상 열린 곳에 있다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이 그림의 모습은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모습을 대변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 “달빛이 희고 밝게 빛나는 밤중에 옷을 잘 차려입은 과년한 규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횡으로 늘어선 채 길거리를 휩쓸 듯 거닐면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해바라기 씨라도 까먹을 때, 웬만한 총각이 아니고서는 이들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다 처녀들에게 밉보이는 날에는 그 길로 처녀들에게 휘둘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리라.” 이는 1940년대에 러시아 작가가 묘사한 나시주 처녀들의 밤나들이 정경이다. 요즘도 부녀자들이 저녁 9시쯤에 리지앙 꾸청 쓰팡지에(四方街)에 수 십 명이 모여 민속춤을 즐기곤 한다. 이렇게 활달하고 건전한 나시 처자들이고 보니, 그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는 온유하고 수줍음을 띤 수식어는 어색할 것 같다.
(그림 55) 빈곤한 이(貧)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가난한 이의 다이아먼드다
가난한 이는 예나 지금이나 차림새가 흐트러지는 모양이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이긴 한데 봉두난발(蓬頭亂髮)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림이 이 단어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재물이 사람을 고뇌와 수심에 빠뜨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돈만 있고 다른 것, 예를 들어 친구라거나 자유로움 같은 것이 없다면 행복은 결코 만져볼 수가 없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다면 절대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 것이리니. 돈보다 더 커다란 가치를 추구해야 할 시대다.
(그림 56) 춘하추동
리지앙의 봄은 온갖 꽃이 만발하고 가을은 달빛이 좋더라. 여름엔 서늘한 바람이, 겨울엔 흰 눈이 날려 좋아라.
나시 사람들이 사계를 표현한 그림을 보면, 네 가지 도안에 공통적으로 하늘을 뜻하는 중간 괄호가 그려있다. 그리고는 계절에 맞춰 봄에는 들판에 고만고만한 크기의 백화가 만발한 모습을 그렸고, 여름엔 빗줄기인 듯 바람인 듯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으며, 가을은 논밭에서 작물이 자라 올라온 모습을 나타냈고, 겨울은 눈송이가 내리는 모습이다. 단순하면서도 자연의 변화를 잘 포착한 게 아닐런지.
나시주는 더위도 신으로 모시는데 전설에 따르면 더위와 사람은 형제 관계란다. 평소에 바위덩어리 하나를 캐건, 나무 한 그루를 자르건 모두 이 더위 신에게 예를 갖춰 제를 올려야 한다. 나시주는 자연과 서로 의존해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민족이다. 리지앙에는 성벽이 없고, 길거리에는 제반 교통 법규를 어기는 이들이 없다. 거리는 물줄기를 따라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그들이 믿는 바로는 온갖 물상이 모두 영혼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만물과 정을 통한다고 글로 써 왔다. 봄꽃, 가을 달, 여름바람, 겨울눈은 간결한 표현이지만 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들을 생각하노라면 맘속에 모종의 내밀한 희열이 피어오름을 느끼게 된다.
(그림 57) 거래하다
나는 차를 살 수 있다. 그것이 진정 원하는 바는 자유다. 나는 술을 한 병 살 수 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친구다. 많은 경우에 나는 진정으로 원했던 것을 잊은 채 그 외형만을 열심히 사들인다.
거래를 한다는 것은 다양한 행위를 내포한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거래고, 타인과의 교유도 일종의 거래다. 우리는 남과 거래할 때 서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림에서도 두 사람이 귀는 없고 목청껏 자기주장을 해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 물건 값을 흥정하는 모양이리라.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둘이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다. 나시 사람들이 물물 교환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거래가 단절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무언의 합의 하에 자기주장을 펴거나 혹은 상대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겠다.
반면에 “입술이 창이 되고, 혀가 검이 되는(脣槍舌劍)” 식의 힘겨루기 설전은 예부터 있어왔다. 이처럼 상거래에 있어서 입씨름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나시 민족의 전통과 유관한 듯 하다. 옛날에는 리지앙 점포에 여자들만 있었다. 일단 남편이 가게에 있게 되면 골치 아픈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왜냐하면 남편은 그야말로 “바깥양반”이기 때문에 손님이 찾는 성냥이 어디 있는지, 절인 채소가 어디 있는지, 어떤 술동이에 그 손님이 찾는 술이 담겨 있는 지 도통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남자는 손님에게 처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달라고 사정해 손님을 붙잡아 두고, 잠시 후 여주인이 돌아오면 손님이 찾던 것을 들고 돌아가게 마련이었다. 여자는 집안 살림을 도맡고, 남자는 악기, 바둑, 그림, 글, 담배, 술, 차 이런 것과 친했던 것이 나시주 생활 관습이었다. 이 남자들 정말 꿈같은 세월을 살았네요.
(그림 58) 음주
어느 주당 왈,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은 고통을 익사시키기 위함인데, 망할 놈의 것이 수영을 터득했네 그려”
그림에 있는 잔이랄까 단지가 커서 그렇지, 요즘 같은 더위에는 연인들이 시원한 카페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과일 쥬스 한잔을 빨대로 들이키는 장면 같기도 하다. 냉커피 한 잔 하는 그림 같다.
옛날에도 술을 마실 때는 속빈 보릿대를 사용했단다. 리지앙에서는 벌써 수백 년 동안 술에 과일을 섞어 즉, 과실주를 만들어 먹었단다. 도수가 높지 않고 호박 광채가 나며 입맛이 달콤하다. 예전에 리지앙의 허다한 가게들이 모두 자기네가 양조한 과실주를 팔았다. 나시 사람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길을 가다가도 곧 자리에 앉아 과실주를 한 순배씩 돌리곤 했단다. 이 때 보릿대가 빨대로서 한몫했다. 이러다 보니 오늘날의 카페나 바처럼 술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산에서 물건을 팔러 내려온 이도 물건을 다 팔아 치우고는 기분 좋게 과실주 단지를 들이켰고, 이내 흥에 겨우 허리춤에서 대피리를 꺼내들어 불면서 산길을 올라가곤 했던 것이다. 술은 누가 뭐래도 생활의 활기를 되찾게 하는 효력이 있다.
(그림 59) 행복
행복은 곧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사는 것이 늘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그림에서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긴장이 풀어진 상태로 화로를 끼고 앉아 있는 사람이다. 마침 화로에서는 음식이 따끈하게 데워져 김이 올라오고 있다. 아마 바깥은 삭풍이 불어 오가는 행인도 적으리라. 이럴 때 이 사람은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라.
나시 사람들은 생활 자체를 신앙으로 간주하며 소박한 즐거움을 추구한다. 어떤 이는 나시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을 이렇게 묘사했다. 즉, 밭이 있고 과수원이 있으며, 소나 말 같은 가축이 떼를 이루고, 집이 널찍하여 거소가 쾌적하면 그들은 행복하다고 느낀다.
여기까지라면 나도 옛날 나시 사람들이 소박한 행복을 그려왔다고 동의하겠다. 그런데 위의 표현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처자가 예쁘고, 쌀과 소유(酥油 : 연유)가 창고에 그득하며, 술 단지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신체 건강하고 성욕 왕성하며, 싱싱한 꽃들이 만발한 고원 초지위에서 의기투합하는 지인들과 연달아 가무음주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거다. 이 정도 수준으로 삶의 조건을 구비한 것이라면 결코 소박한 욕심이라고 말 할 수 없으리라. 이건 아마도 나시 사람들이 터 잡고 살던 지역이 자연 환경이 쾌적한데다 기후조건도 좋아 농사와 목축 모두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그림 60) 겁나다
사람들은 태곳적 원시라거나 신비한 사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곤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떨칠 수 없는 두려움으로 그 곳을 회피하고, 또 다른 이는 그 곳을 정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다.
이 그림문자는 특히 재밌는 표현이다. 누가 보아도 손과 발에 쥐가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겁을 먹고 있는 의미로 표현했다. 겁은 사람의 본능적 반응이다. 입술은 심장이 떨리는 것을 감출 수 있으나, 몸은 도리어 거짓말 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오금이 저리다는 있지 않은가. 너무 긴장하면, 지나치게 겁이 나면 움찔도 못하고 마비되는 게 인간의 감정과 신경계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도 직관성을 잘 살려 손쉽게 의사전달을 하고 있는 셈이다.
초자연 현상에 대한 겁을 인간은 신앙으로 극복하기도 한다. 나시주의 신앙은 똥바교(東巴敎)인데 숭배의 대상이 매우 다양하다. 각양각색의 신령한 존재가 2,400여 개나 된다. 그들은 각종 의식을 통하여 가축신, 약초신, 전쟁신, 대장장이신 등 다양한 신령에게 축복을 기구하며, 또한 물귀신이라거나 구설시비 귀신 등 각종 귀신을 내쫒는다. 이웃집과 말로써 시비가 붙는 것도 귀신의 장난으로 보고 있음이 재미있다. 제사 지낼 때 추는 춤 가운데, 어떤 동작은 악귀와 대적하고 있는 모습을 흉내 낸 것이다. 종교적 신앙은 나시주에게 심리적 위안을 준다.
(그림 61) 울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살 수 없을까? 욕심이다. 모든 인생은 눈물을 흘리도록 재촉한다고 위안삼자.
양미간을 찌푸려 눈 꼬리가 올라간 상태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렸다. 분노의 눈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우리 마음에게 필요한 탈출구이다. 만일 눈물을 통해 슬픔이나 분노나 억울함을 배출하지 못한다면 우리 마음은 진작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조물주가 우리에게 내린 선물이리라.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학습능력이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마음을 감추고 눈물을 감출 줄 안다. 거기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것이 마음의 병이 되곤 한다. 이제부터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숨김없는 눈물처럼 내 마음의 분노와 억압과 서러움을 쏟아내는 눈물을 감추지 말자. 그러기에 눈물은 카타르시스라 하지 않던가.
(그림 62) 배고픔과 배부름
배가 텅 비면 배고프다 하고, 배고프면 곧 배를 채운다. 배가 불러오면 그 포만감이 행복으로 바뀐다.
그림에서 배고픈 자와 배부른 자의 차이점 하나는 배에 점을 찍은 것과 안 찍은 것이다. 아마 요즘의 골다공증 증세 그림처럼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지지 못한 상태를 배고픈 상태로 표현한 것일 게다. 그 옆의 배부른 이는 입 모양도 다르다. 입을 크게 벌린 품이 노래라도 하는 모양이다. 행복감의 표현이리라.
그런데 왜 배가 “부르다”와 “고프다”를 가지고 상대어를 만들었을까? 부르다는 뭔가 차올라 붕싯한 모양을 뜻한다. 그렇다면 고프다는 속이 비어 푹 가라앉은 모습을 나타내야 할 텐데, 그런 느낌이 없다.
아하, 그렇구나. 고프다는 “곱다”라는 말에 “으”가 들어간 것이 아닐까? 만일 이 추정이 가능하다면 “곱다”는 구부러진 상태를 뜻하기도 하니까, 즉 예를 들면 어릴 적에 겨울철 맨손으로 눈싸움을 하느라 손이 얼었다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면 그 자그마한 손이 맥없이 굽어있는 것을 경험하곤 했으니, “곱다”는 “굽다”의 작은 말로 배가 구부러진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곧 속이 비어 배에 힘이 없으면 상체가 약간 앞으로 쏠릴 정도로 휘지 않던가?
동자승이 큰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수행을 하시나요?” 큰 스님이 대답하길 “밥 먹고, 잠자지”했다. 이 말 들은 동자승이 다시 “저도 똑 같이 하는데요, 어째서 저는 수행이 안 될까요?”했다. 큰 스님이 깨우쳐 말하기를 “왜냐하면 너는 자야할 때 자지 않고, 먹어야할 때 먹지 않기 때문이지”라고 했다. 큰 스님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자연스럽고 간단하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깨닫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게 바로 “간단함”이다.
(그림 63) 집안
집은 이성을 논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다. Home은 사랑하는 이가 불 밝히고 우리를 기다리는 곳이다.
이 그림의 전체 형상은 나시 사람들이 사는 가옥을 표현했고, 아래쪽 사각형은 방을 뜻하는데, 방안에 그려진 것은 담뱃잎과 바늘이다. 그렇다, 나시주에게 있어서 방이라면 담뱃잎과 바늘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나 한자는 이와 다르다. 한자의 “집(家)”은 처마 밑에 돼지가 있는 형상이다. 어떤 이는 이 한자에서 돼지를 어린 자식들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 놓고 얘기한다면 한족들은 농경 생활을 했기에 외양간이나 돼지우리가 있어야 집이 된다. 이에 반해 나시주는 초기에 유목 생활을 했기에 그들에게 집안은 남자가 담배 피고 여자가 바느질 하는 곳이다.
어떤 그림이 집을 그리고 그 안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 이렇게 세 사람이 있는 모양이라 하자. 이것은 바로 똥바 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상(吉祥) 축복어인 “집에 함께 있어 즐겁기를 바라다”는 뜻이다. 집은 가족과 가족간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지 결코 덩그러니 크기만 한 공간이 아니다. 집은 서로 정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는 곳이므로, 사랑받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집이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1) 전설에 따르면 그들이 찾아 간 천국은 위롱(玉龍) 제3국인데, 이 곳에서 남자는 흰 사슴을 이용해 논을 갈고 여자는 호랑이를 의자 삼아 앉아 베를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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