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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환상의 커플이 `환상`인 이유

falcon1999 2012. 4. 6. 12:00

 

환상의 커플이 '환상'인 이유.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기억상실에 걸려 남에 집에 얹혀사는데도 기가 죽기는커녕 입만 열면 “꼬라지 하고는...”하면서 다른 사람 타박하기 일쑤에 자장면은 어찌나 좋아하는지 하루 세끼 주식이다. 지난 주 막을 내린 ‘환상의 커플’, 일명 환커의 여주인공 우리의 조안나, 아니 나상실의 이야기이다. ‘환상의 커플’은 많은 우려와 함께 시작된 드라마였다. 쾌걸 춘향과 마이걸의 히트 작가 홍자매의 집필에 기대가 쏠리기도 했지만 ‘가을 소나기’로 3%대의 시청률을 올리며 남자배우로서 방송국 측에 죄송하단 소리까지 해야 했던 오지호와 시트콤으로 인기는 얻었지만 정극 연기에서 하이톤의 목소리와 도도한 인상으로 인해 끊임없이 연기력을 의심받았던 한예슬이 주인공을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환상의 커플은 조심스럽게 시작했고 화려하게 끝맺었다. 그렇다면 그런 환상의 커플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MBC의 이쁜 늦둥이

우선 MBC측에 환상의 커플은 뒤늦게 효도하는 이쁜 늦둥이 같은 자식이었다. 각 방송사들의 드라마 공세에 재작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던 드라마 왕국 MBC가 야심차게 시작했던 주말 저녁 드라마. 그 첫 테이프는 ‘발칙한 여자들’ 이었다. 신선한 진행과 재미있는 코미디 복수극 형태로 매니아층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SBS의 김수현 여왕님의 ‘사랑과 야망’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시청률 측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물론 환상의 커플 역시 사랑과 야망이 끝나기 전까지는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나고 각종 이슈를 몰고 다니면서도 시청률은 10% 후반 대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환상의 커플이 방영되는 날 밤이면 '사랑과 야망'을 봐야한다는 부모님과의 리모콘 전쟁에 돌입하는 젊은 세대들이 있었고 상실이가 먹는 자장면을 지금 당장 꼭 먹어야겠다며 10시 넘어서 중국집에 전화해대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날 못먹으면 다음날이라도 꼭 자장면을 사먹어야 했다). 700원에 자장면 맛을 내는 상실이의 짜장 라면이 방영되는 날에는 밤중에 짜*게티를 사러 편의점으로 달려가게 만들기도 했다. 정극답지 않은 시트콤 형식과 패러디의 천국, 한 회면 몇 번씩 울리기도 배꼽을 잡게도 만드는 이 사랑스러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MBC 주말드라마의 위치를 상승시켜 주었다.


 드라마 장르의 확장

 

 

 

 앞에서도 말했지만 환상의 커플은 정극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웃겼다. 드라마는 쇼프로보다 지루해서 안본다고 하는 어린 층도 환상의 커플을 볼 때만은 '웃찾사'나 '개그야'를 볼 때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환커는 한국 드라마답지 않게 늘어지지 않고 스피디한 진행에 지루해질 때 쯤 되면 광고나 타 드라마 패러디를 적절히 넣어서 그 소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뒤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안나와 철수가 프린세스와 꽃순이를 교환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인데? 싶을 때 튀어나오는 음악. 상상치도 못했던 광고 패러디였다. 그리고 우리의 공실장님과 누님. 병 걸린 소를 고치는데 “얼마면 돼. 얼마면...” 귀여운 공실장의 외침에 우리는 잠시 가을동화의 원빈을 떠올리게 되었다. 일찍이 시트콤도 아닌 정극 드라마에서 이처럼 패러디가 적절히, 그리고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보았는가. 공실장과 누님 커플은 '가을동화' 패러디 커플이었다. 사돈의 팔촌이라 우리는 안 된다며 결혼식장에서 뛰쳐나가는 저 사랑스러운 중년 커플은 송혜교, 송승헌의 페르소나를 이미 뛰어넘었다. 빌리와 강자의 쫓고 쫓기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극 중 약간 새로운 정신 세계를 가지고 있는 '강자'는 환상의 커플 최고의 조연이었다. 뜀뛰기가 특기인 강자와 몸 약한 빌리의 쫓고 쫓기는 추격신을 카메라가 롱샷으로 잡을 때 드라마 속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처럼 환상의 커플은 드라마의 영역을 코미디, 혹은 영화적으로 확장시켰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에 웃음을 주는 장면들을 배치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재미를 주고 드라마가 늘어지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환상의 커플, 시트콤이라고 하기에는 완벽한 스토리텔링을 갖추었고 정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웃겼다.

 

 

 

 

 진부하지 않은 기억 상실의 리메이크

 환상의 커플의 미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처음부터 골디혼과 커트 러셀의 영화 ‘환상의 커플’의 리메이크 작이라고 밝혔던 드라마 환상의 커플은 영화 환상의 커플과 많은 부분 닮아있다. 영화 환상의 커플은 갑부지만 성격 더러운 여성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리고 원수 같은 목수의 집에서 부부인줄 알고 얹혀살면서 그의 아이들과도 정을 쌓고 가난한 목수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심지어 여주인공 이름도 ‘조안나’, 드라마와 같다. 드라마와는 다른 점이라면 극 중 남자주인공 '딘'의 아이들은 네 명이고 조카가 아닌 친자식이라는 점, 여주인공 조안나가  기억 상실증이 된 후로는 성격이 좀 착해진다는 점 정도이다. 그렇게 환상의 커플은 리메이크임을 공표했고, 게다가 드라마에서 너무 자주 쓰여서 이제는 시청자들이 하품까지 할만한 '기억 상실증' 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 그러나 기억 상실증이라는 소재가 이렇게나 박진감 넘쳤던 적이 있었던가. 어차피 기억을 찾고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청자들은 상실이가 조금씩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다. 상실이가 조안나로서 기억을 찾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기억을 찾더라도 우리의 상실이는 잘 이겨낼 것이라는 강한 캐릭터에 대한 믿음이 드라마를 단단하게 지켜주었다.(게다가 기억을 찾기만 하면 돌아오는 그 많은 재산은 처음부터 안나의 것이 아닌가). 영화에서는 '애니'가 '조안나'로 돌아오는 과정이 마지막 십분 사이에 쌩뚱맞게 이루어지지만 드라마 환상의 커플은 그 과정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풀어나갔다.  처음부터 영화보다 드라마가 먼저였던 것처럼 드라마 환상의 커플은 영화의 재미는 그대로 가져오면서 더 매끄러운 진행으로 외국 원작을 뛰어넘는 흔치 않은 리메이크 작이 된 것이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의 격전장

사실 환상의 커플은 많은 부분 캐릭터에 기대는 드라마이다. 상실이가 못되고 이기적이지 않고 착하고 순종적인 여자였다고 상상해봐라. 아...상상만으로도 벌써 졸리기 시작한다. “오빠한테 고마웠다고 전해주세요.” 라면서 우리 사이에 특별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라이벌에게, 정말 고마워서 그러는 건지 그 사실을 내가 알아주길 바라고 말하는 건지 분명히 하라며 화를 내는 여주인공이라니. 그 장면에서는 너도나도 속 시원함을 느꼈을 것이다. 극 중 유경은 그렇게 가진 것 없는 상황에서도 당당했던 상실이의 자신감이 '돈'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상실이의 자신감은 '돈'이 아니었다. 상실이는 돈이 한푼도 없을 때도 자신감이 과잉일 정도였다. 가진 것 없다고 해서 바로 비굴해지지 않고 원래의 '싸가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나상실의 매력인 것이다. 또, 착한 상반신과 귀여운 미소를 가진 오지호가 연기한 철수 역시 상실이의 코믹 행동 뒤에 적절한 리액션으로 더 큰 웃음을 유발하며 튀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묻히지 않고 듬직함 하나로 뭇 여인네 가슴을 설레게 했다.

 환상의 커플의 인물들은 다들 자기 이익을 위해 머리는 굴리지만 그동안의 드라마들과 달리 악한은 없다. 아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서도 버린 '빌리'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미움을 살만한 악역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었지만 마음 약하고 죄책감에 악몽까지 꾸고 끄떡하면 공실장을 찾는 약한 남자이다. 심지어 그가 안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벌이는 작전은 귀엽기까지 하다. 게다가 그는 안나의 돈이 모두 제차지가 될 수 있는데도 떠나지 않고 그녀를 돌려놓으려 하는 순정파적 면모까지 보인다.

 좋아하던 남자가 조카들을 다 떠안게 되자 선봐서 딴 남자에게 시집가려고 하는 동화작가 지망생 오유경은 또 어떠한가. 지극히 현실적인 성격에 “술 취한 척 하는 건 뭐 쉬운 줄 알아요?” 라며 대놓고 뻔뻔하다. 물론 얄밉기는 하다. 그렇지만 더 막말하는 상실이 앞에서는 말대꾸도 못하고 져주기도 하며 얼떨결에 상실에게 한약까지 해주기도 한다. 마지막에도 충분히 흉계를 꾸밀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상황이 흘러가는 걸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전적으로 사장님 편을 들면서 '빌리'의 아이디어 뱅크를 자처하는 공실장 역시 간신 같은 캐릭터임에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대놓고 웃음을 주는 강자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고 쓰리석 세 아이들과, 애견 꽃순이 마저도 연기파 배우였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쿨’함.

 여자를 속여서 부려먹고 싸우다가 결국은 사랑에 빠지는 커플이 있다. 여기서 남자가 여자를 속였다는 것은 드라마 전반을 지배하는 가장 큰 비밀이고 가장 큰 갈등을 유발하는 소재가 될 수 있다. 다른 드라마라면 어땠을까. 분명 마지막 회에 가서야 비밀이 밝혀지고 별 대단치도 않아 보이는 이 비밀 때문에 주인공들은 울고 짜고 방황할 것이다. 그리고 이 비밀은 남자 스스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분명 악녀 캐릭터에 의해 본의 아니게 오해의 소지로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환상의 커플은 달랐다. 철수가 상실이를 속였다는 것을 철수의 입을 통해서 간단하게 전해지게 했으며 상실이는 괘씸해하면서 귀여운 복수를 하기는 하지만 철수를 용서해준다. 그 둘은 이 비밀 때문에 크게 방황하지 않고 비밀은 오히려 사소하고 귀여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이처럼 이야기의 진부함을 뛰어넘는 깔끔한 전개와 캐릭터들의 ‘쿨’함은 환상의 커플을 군더더기 없이 상쾌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리고 비밀이 밝혀진 후의 드라마는 상실이의 자아찾기라는 것에 집중하면서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때문에 상실이 안나가 된 마지막 2회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기도 했지만 마지막 정리를 신중하게 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리 코믹적 요소가 강하다고 해도 로맨틱 코미디를 지향하는 멜로 드라마라는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말이었다.

 

 


 진정 남긴 것은 한예슬과 홍자매

 한예슬은 홍자매 작가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다. 그리고 환상의 커플은 한예슬이라는 배우의 재발견이었다는 의견들도 지배적이다. 그러나 환상의 커플 속 조안나는 그야말로 한예슬을 생각하고 만든 주인공 같았다. 평소의 그녀의 약점이 되던 하이톤의 목소리와 도도하고 고양이 같은 얼굴이 조안나에게는 필수였다. 그것은 ‘논스톱’에서 한예슬이 맡았던 ‘싸가지’ 캐릭터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예슬의 재발견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한예슬을 우리는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는 어떤 역할에서 어떤 연기를 하게 될지 기대를 주는 배우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일명 홍자매로 불리는 홍정은, 홍미란 작가들에 대해서 우리는 큰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한국에 이만한 스펙트럼으로 장르 불분명의 다양한 영역의 코미디 드라마를 생산해내는 작가가 있다는 것이 신선할 정도이다.


 주말에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을 빨라지게 하고 평소엔 잘 먹지도 않던 자장면에 올인하게 만들었던 환상의 커플(그야말로 자장면의 재발견이었다). 월요일이면 각 포털 사이트에 각종 유행어를 남겼던 환상의 커플이 끝났으니 당분간은 폭소를 터트리게 하는 드라마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뭐, 금세 재밌는 딴 드라마 찾아 떠나는 게 시청자들 속성이라지만, 환상의 커플은 분명 우리에게 특별했고 한국 드라마에 큰 진화를 가져온 작품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환상의 커플이 남긴 것들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그래서일까...떠나간 자장면은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지만 환상의 커플은  이번 주말에 다시 돌아올 것만 같다.

 

 

출처 : Milkhedge jamroll
글쓴이 : 분홍치즈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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