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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국지 촉서 관우 열전

falcon1999 2009. 6. 10. 23:26

출처:  http://podor.egloos.com/1418604

 

삼국지 촉서 관우 열전

 

관장마황조전 關張馬黃趙傳에서 관우 부분입니다.
관우 關羽 Guan Yu

關羽字雲長,本字長生,河東解人也。亡命奔涿郡。先主於鄉里合徒眾,而羽與張飛為之禦侮。先主為平原相,以羽、飛為別部司馬,分統部曲。先主與二人寢則同床,恩若兄弟。而稠人廣坐,侍立終日,隨先主周旋,不避艱險。先主之襲殺徐州剌史車冑,使羽守下邳城,行太守事,而身還小沛。

禦侮/어모/ 모욕을 막아낸다는 뜻]

관우 關羽의 자는 운장 雲長, 본래 자는 장생 長生으로, 하동 河東 해 解 사람이다. 탁군 涿郡으로 망명[亡命/여기서 뜻은 중죄를 저지르고 달아남], 선주 先主[유비]가 고을에서 무리를 모으자 관우, 장비가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았다. 선주가 평원 平原의 상 相이 되자 관우,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아 부곡 部曲[후한 말 호족이나 장군이 지방 치안 목적의 군사]을 나누어 통솔케 하였다. 선주는 두 사람과 같이 자고 그 사랑이 형제 같았다. 많은 군중 가운데 [유비가] 앉아 있으면 하루 종일 지켜 서고, 선주를 따라서 두루 힘을 쓰는데 어렵고 험함을 피하지 않았다. 선주가 서주徐州 자사 剌史 차주 車冑를 습격해 죽이고 관우에게 하비성 下邳城을 지키고 태수의 사무를 보게 한 뒤 소패 小沛로 돌아갔다.

建安五年,曹公東征,先主奔袁紹。曹公擒羽以歸,拜為偏將軍,禮之甚厚。紹遣大將軍顏良攻東郡太守劉延於白馬,曹公使張遼及羽為先鋒擊之。羽望見良麾蓋,策馬剌良於萬眾之中,斬其首還,紹諸將莫能當者,遂解白馬圍。曹公即表封羽為漢壽亭侯。

건안 5년, 조공[조조]이 동쪽을 치자 선주는 원소에게 달아났다. 조공이 관우를 사로잡아 돌아와 편장군에 앉히고 예우가 매우 두터웠다. 원소가 대장 안량을 보내 동군 태수 유연 劉延을 백마 白馬에서 치자 조공이 장요, 관우를 선봉으로 공격했다. 관우가 멀리 안량의 휘개 麾蓋 [장수의 깃발과 일산 日傘]를 보고 말을 몰아 수많은 군사 가운데서 찔러 죽이고 그 목을 베어 돌아오니 원소의 여러 장수가 당할 자가 없어 곧 백마의 포위가 풀렸다. 조공이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에 봉했다.

初,曹公壯羽為人,而察其心神無久留之意,謂張遼曰:「卿試以情問之。」既而遼以問羽,羽歎曰:「吾極知曹公待我厚,然吾受劉將軍厚恩,誓以共死,不可背之。吾終不留,吾要當立效以報曹公乃去。」遼以羽言報曹公,曹公義之。乃羽殺顏良,曹公知其必去,重加賞賜。羽盡封其所賜,拜書告辭,而奔先主於袁軍。左右欲追之,曹公曰:「彼各為其主,勿追也。」

처음에 조공이 관우의 사람됨을 장하다 여겼으나 오래 머물 뜻이 없음을 살피고 장요에게 말했다.

"경은 인정을 내세워서 그에게 물어보시오."

장요가 관우에게 그렇게 묻자, 관우가 탄식했다.

"조공께서 저를 후대하심을 충분히 아나, 유 장군께 큰 은혜를 입어 함께 죽기를 맹세한 터라 배신할 수 없소. 저는 결국 머물지 못 할 것이나 공을 세워서 조공께 보답하고 떠나야 하오."

장요가 그 말을 아뢰니 조공이 의롭다 여겼다. 관우가 안량을 죽이자 조공은 그가 반드시 떠날 것을 알고 포상과 하사품을 더욱 두텁게 했다. 관우가 그 받은 것을 모조리 봉하고 글을 써 작별 인사를 한 뒤 원소 군에 있던 선주에게 달아났다. 좌우에서 추격하려 했으나 조공이 말하였다.

"그가 따로 주인을 위함이니 추격치 말라."

從先主就劉表。表卒,曹公定荊州,先主自樊將南渡江,別遣羽乘船數百艘會江陵。曹公追至當陽長阪,先主斜趣漢津,適與羽船相值,共至夏口。孫權遣兵佐先主拒曹公,曹公引軍退歸。先主收江南諸郡,乃封拜元勳,以羽為襄陽太守、蕩寇將軍,駐江北。先主西定益州,拜羽董督荊州事。羽聞馬超來降,舊非故人,羽書與諸葛亮,問「超人才可比誰類」?亮知羽護前,乃答之曰:「孟起兼資文武,雄烈過人,一世之傑,黥、彭之徒,當與益德並驅爭先,猶未及髯之絕倫逸群也。」羽美鬚髯,故亮謂之髯。羽省書大悅,以示賓客。

*護前 과거의 잘못 등을 인정치 못 하는 성격

선주를 따라서 유표 劉表에게 갔다. 유표가 죽자 조공이 형주를 평정 荊州하니 선주가 번樊에서 남쪽으로 강을 건너고 따로 관우에게 배 수백 척을 주어 강릉 江陵에서 모이자 하였다. 조공이 추격해 당양 當陽의 장판 長阪에 이르고, 선주는 돌아서 한진 漢津으로 가 관우의 선단을 만나 같이 하구 夏口에 닿았다. 손권이 군사를 보내 선주를 도와 조공에 맞서자 조공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선주가 강남의 여러 군을 거두고 그 원훈 공신들의 직위를 정하며 관우를 양양태수 襄陽太守 겸 탕구장군 蕩寇將軍에 제수, 강북 江北에 주둔케 했다.선주가 서쪽으로 익주를 평정하고 관우에게 형주를 다스리게 했다. 관우가 마초의 투항을 듣고 원래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므로 글을 써 제갈량에게 물었다.

"마초의 재주는 어떤 사람들과 비교할 만합니까?"

제갈량이 관우의 자존심이 강함을 알고 답했다.

"맹기[마초]는 문무를 겸비하고 그 웅렬[굳세고 맹렬함]이 보통을 넘으니 일세의 영걸이라 경 黥[영포]、팽 彭[팽월]의 무리이니 마땅히 익덕[장비]과 선봉을 다툴 만하나, 수염[髯. 곧 관우]님의 절륜과 군계일학에 미치지 못합니다."

관우의 수염이 아름다워 제갈량이 수염님이라 한 것이다. 관우가 글을 살피고 크게 기뻐 손님들에게 보여줬다.

 羽嘗為流矢所中,貫其左臂,後創雖愈,每至陰雨,骨常疼痛,醫曰:「矢鏃有毒,毒入於骨,當破臂作創,刮骨去毒,然後此患乃除耳。」羽便伸臂令醫劈之。時羽適請諸將飲食相對,臂血流離,盈於盤器,而羽割炙引酒,言笑自若。

관우가 예전에 화살에 왼팔이 뚫려 그 상처가 낫긴 했지만, 날씨가 궂고 비가 오면 뼛속까지 아팠다. 의원이 말했다.

"화살촉에 독이 발라져 뼛속으로 파고들었으니 팔을 째 뼈를 긁어 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병이 없어질 것입니다."

관우가 곧 팔을 뻗어 의원에게 팔을 째게 하였다. 이때 관우가 마침 여러 장수를 불러 먹고 마시고 있었는데 팔에서 피가 흘러 떨어지고 쟁반에 가득찼지만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잘라먹고 술을 마시는데 말하고 웃는게 태연했다.

 二十四年,先主為漢中王,拜羽為前將軍,假節鉞。是歲,羽率眾攻曹仁於樊。曹公遣於禁助仁。秋,大霖雨,漢水泛溢,禁所督七軍皆沒。禁降羽,羽又斬將軍龐德。梁、郟、陸渾群盜或遙受羽印號,為之支黨,羽威震華夏。曹公議徙許都以避其銳,司馬宣王、蔣濟以為關羽得志,孫權必不願也。可遣人勸權躡其後,許割江南以封權,則樊圍自解。

24년에 선주가 한중왕이 되고 관우를 전장군, 가절월에 제수했다. 이해,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번성에서 조인을 공격했다. 조공이 우금[본문은 어금]을 보내어서 조인을 도왔다. 가을인데 큰 장마가 내려서 한수가 범람, 우금 휘하의 7군이 모두 수몰됐다. 우금이 관우에게 항복하고, 관우가 또한 장군 방덕을 참하였다. 양 梁、겹 郟、육혼 陸渾 지방의 도적 떼 중에 어떤 자들은 멀리서 관우의 인호 印號를 받아서 지당 支黨이 되니 관우의 위세가 중국을 흔들었다. 조공이 허도 許都에서 옮겨 그 예봉을 피할 것을 의논하자, 사마 선왕[사마의]과 장제 蔣濟가 관우의 성공을 손권 또한 바라지 않을테니,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관우 뒤를 치게 권하고 강남을 잘라 손권에게 준다 허락하면, 번성의 포위가 절로 풀린다 했다.

曹公從之。先是權遣使為子索羽女,羽罵辱其使,不許婚,權大怒。又南郡太守糜芳在江陵,將軍傅士仁屯公安,素皆嫌羽輕自己。羽之出軍,芳、仁供給軍資,不悉相救,羽言「還當治之」,芳、仁鹹懷懼不安。於是權陰誘芳、仁,芳、仁使人迎權。而曹公遣徐晃救曹仁,羽不能克,引軍退還。權已據江陵,盡虜羽士眾妻子,羽軍遂散。權遣將逆擊羽,斬羽及子平於臨沮。

조공이 따랐다. 예전에 손권이 사신을 보내 아들을 관우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는데 관우가 그 사신을 모욕하며 불허해 손권이 크게 노했다. 그리고 남군 태수 미방 糜芳이 강릉에, 장군 부사인 傅士仁이 공안에 주둔하며 모두 평소 관우가 무시한다  미워했다. 관우가 출전하자 부사인과 미방이 군수 물자 공급에 진력치 않아 관우가 "돌아가서 그 죄를 다스리겠다" 하니 미방과 부사인이 모두 두렵고 불안했다. 이때 손권이 미방과 부사인을 은밀히 꾀자, 미방과 부사인이 사람을 보내어서 손권을 맞이했다. 조공이 서황을 보내 조인을 구원하니 관우가 이길 수 없었다.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거, 관우의 사졸의 처자를 사로잡아 관우의 군사가 흩어졌다. 손권이 군사를 보내 관우를 역습, 관우와 그 아들 관평을 임저 臨沮에서 참했다.  

 追謚羽曰壯繆侯。子興嗣。興字安國,少有令問,丞相諸葛亮深器異之。弱冠為侍
中、中監軍,數歲卒。子統嗣,尚公主,官至虎賁中郎將。卒,無子,以興庶子彝續封。

*尚 /상/ 장가들다

뒤에 관우의 시호를 장무후 壯繆侯라 했다. 아들 관흥 關興이 계승했다. 관흥의 자는 안국 安國으로, 어려서 영문 令問이 있어 승상 제갈량이 그 기량을 매우 남다르다 여겼다. 20 세에 시중, 중감군이 되나 몇년 뒤 죽었다. 그 아들 관통이 계승, 공주와 결혼하고 벼슬이 호분중랑장에 이르렀다. 자식 없이 죽어 관흥의 서자 관이 關彝가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