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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만나다

falcon1999 2008. 12. 3. 11:50

 

 

   지난 11월 7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서양 미술 거장전>이 열리고 있다.

 

    그 중심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가 있다.

 

    때에 맞추어 출간된 '렘브란트를 만나다'  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단상, 그리고 시를 담고 있는데, '빛'을 통해 말하는 그림으로 '은유'를 표현하는

 

    천재 화가의 결코 평탄치 않았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렘브란트를 만나다, 도서출판 가치창조, 2008년 11월 15일 출간, 10,500원.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

 

   네덜란드, 천재 화가, 자화상,

   초상화, 에칭 판화, 밝음, 어두움,

   야경, 성서,....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만나다

   

 

     청년시절의 자화상 Self-Portrait, c. 1628

 

    렘브란트와의 첫 만남이다.

 

    젊은 시절, 22세의 렘브란트는 이렇게 자신을 남긴다.

 

    예술가로서, 한 사람으로서 최정점과 바닥을 넘나든 그는 질곡의 삶을 예견하듯

 

    빛을 등에 업고 미지의 앞날을 시작한다.

 

 

    한가로운 오후다.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흡수하고 그곳의 분위기를 음미한다.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이, 눈부심을 피하려는 듯 빛을 등지고 앉은 이가 보인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눈부심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여행의 묘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나는 여행지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을 여행의 달콤함으로 여긴다.

 

    이 잠깐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여행은 나에게 여행이 아닌 고행으로 느껴진다. 이런 전제 아래 여행을 떠난다.

 

    이러한 시간의 또 다른 묘미는 빛의 아늑함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라보는 빛이 아닌 유일하게 나를 비추는 빛으로.

 

 

    시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인 Woman Bathing in a Stream, c. 1654

 

    1654년 10월, 렘브란트는 헨드리케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

 

    이 그림의 제작시기가 아이를 낳기 전인지 후인지 뚜렷하지 않지만

 

    아내에서 어머니로서의 품성을 지니게 된 헨드리케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닐까.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아이를 잉태하고 생산하는 것,

 

    그리하여 어머니가 되는 것이 경건한 일임을 나타내려는 듯하다.

 

 

    터벅터벅 길을 간다. 아직 목적지까지는 한참을 가야 한다.

 

    지도를 펼쳐든다. 그곳으로 향한다.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뙤약볕과 동반한다.

 

    피곤이 몰려온다. 재촉하는 이도 없건만 발걸음이 빨라진다.

 

    목의 갈증만 채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시원한 물에 탁족이라도 하였으면…….

 

 

 

  병자들을 치료하는 그리스도 Christ preaching ('The hundred-guilder print') c.1649

 

    렘브란트는 예수를 가운데 두고 그를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를 좌우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오른쪽은 믿는 자, 왼쪽은 의심하는 자. 길게 뻗은 예수의 오른쪽 손이 맞닿는 곳에 아이를 안고 다가가는 여인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 그를 의심하는 자가 있다. 렘브란트는 여인을 시작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왼쪽에 위치한 사람들이

 

    점차 믿음을 가질 것이라는 계산 아래 이 여인을 이곳에 배치한 것은 아닌지.

 

 

    여행길에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기차에서 옆 사람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낯선 길을 헤매다 친절한 내국인을 만나기도 하고,

 

    때론 무덤덤하게 지나치기도 한다. 연주하는 사람, 조각상처럼 가만히 서 있는 사람, 팬터마임을 하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처음 보는 나에게는 진풍경이지만 그것에 관심 없는 듯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친다.

 

 

  야경 The Night Watch, c.1942

 

    이 그림은 집단 초상화다.

 

    첨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단체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데

 

    렘브란트는 수백년 전 획기적인 집단 초상화를 남겼다.

 

    위대한 예술은 답습이 아닌 창의적 사고에서 나온다는 당연한 원리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렘브란트는 상업적으로 예술적으로 성공한 작가였다.

 

    그는 주문받은 작품을 의뢰인의 요구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연출은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의 명예에 걸맞도록.

 

 

    소풍, 졸업여행, 패키지여행 등 여러 사람이 움직이는 여행에서는 꼭 하는 일이 있다.

 

    단체 사진을 찍는 것. 그것은 여행 상품에서 당연히 들어가는 항목처럼 필수적인 것이다.

 

    그때마다 위치와 자세는 교과서처럼 정해져 있다.

 

    1열, 2열, 3열…… 앞줄은 앉고 중간은 무릎에 손을 대고 몸을 굽히고, 맨 뒷줄은 서서.

 

    언제쯤 이 틀을 벗어날 수 있을지.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c. 1668

 

    그를 받아주는 아버지의 품은 크고 아늑하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어깨를 감싼다.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이렇게 돌아온 것만으로 이미 용서는 이루어졌다. 더없이 소중한 날이다.

 

 

    일상의 따분함을 벗기 위해, 반복되는 일상에 쉼표를 찍기 위해 그리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 기간이 길든 짧든, 힘들든 달콤하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반기는 가족, 편안히 누일 수 있는 보금자리,

 

    그리운 엄마의 손맛 등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아늑해진다.

 

    비록 마음 한켠 아쉬움이 남지만.

 

 

   그리스도의 초상 Head of Christ, c. 1650

 

    렘브란트는 예수를 신성시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우러러보는 전지전능하신 절대자, 우상시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서의 예수를 부각한다.

 

    그는 소박하게 예수의 뒷머리에 조심스레 빛을 드리운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는 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한다.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

 

    첫인상은 단 3분 아니 3초, 최근의 연구결과로는 0.1초 만에 결정된다고 하니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순식간에 나에 대한 평가가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면 때로 모든 것이 참 부질없어진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자화상 Self-portrait, open-mouthed c.1630

 

    수없이 나를 그렸다.

 

    모델이 자세를 취하듯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정과 자세를 찾는다.

 

    바로 이것이다. 마침내 원하는 자세를 찾았다.

 

    렘브란트는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알려져 있다.

 

    자화상의 제작 수로 자신에 대한 애정도를 측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작의도와는 별개로 렘브란트는 그야말로 자기애가 철철 넘치는 화가임이 분명하다.

 

    자화상이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외양뿐만 아니라 내면도 표현해야 한다.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그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되고 퇴색된다.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내가 왜 이런 표정을 지었는지 지우고 싶은 장면들이 수없이 보인다.

 

    그래서 한 번의 클릭으로 저장된 이미지들을 지워버린다. 다시는 그런 장면은 찍지 않으리라.

 

    이른바 ‘얼짱’ 각도와 내가 가장 멋있어 보일 수 있는 표정을 연구한다.

 

 

  자화상 Self-Portarait, c. 1669

 

    렘브란트는 빛의 화가다. 아니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것은 빛의 성질을 알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했음을 뜻한다.

 

    그의 빛은 화면을 화사하게 하는 빛이 아니다.

 

    그의 빛은 자연의 빛이며 종교적인 빛이다.

 

    빛은 다양한 색을 품는다. 그는 빛 속에서 자신의 색을 선택했다.

 

    이제 그의 색들은 빛을 품고 있다.

 

 

    마지막 무대에서 그는 독백을 한다.

 

    그것은 무언의 독백이다. 말이나 몸짓을 통해 표현하여야만 자신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것이 아님을 그는 안다.

 

    그림을 그리는, 똑같은, 반복적인 일상이 행복임을 이제 안다.

 

    예술가, 아니 그는 화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

 

    초상화가로 명성을 떨치고 부귀를 손에 쥐었다.

 

    그는 이제 경제적인 풍요 뒤의 허망함을 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는다.

 

    나지막이 기울어져가는 빛은 실내를 따사로이 비춘다.

 

    그러나 저물녘의 한기가 서서히 올라온다. 이것은 하루가 다 지나감을 의미한다.

 

    시간이 흘러감을 아쉬워함과 더불어 내 집에서의 휴식이 가능함에 안도한다.

 

    그는 이제 영원의 휴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

    ...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되어진 그의 자화상을 보다가

 

    인간의 통찰력을 담은 그림 속에서...

 

  

    ... 나도 렘브란트를 만났다!

 

 

 

출처 : Leica & Nikon
글쓴이 : whit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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