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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인 눈에 비친 1965년의 청계천 풍경
falcon1999
2008. 9. 11. 18:03
‘구와바라 시세이_청계천 사진전’

일본의 유명 원로사진가 중엔 ‘매그넘코리아’에 참가했던 일본 유일의 매그넘 회원 구보타 히로지(69)가 있고 비슷한 연배로 구와바라 시세이(72)가 있다. 두 사진가 모두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구보타는 남과 북을 모두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구와바라는 1964년을 시점으로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시위 등 격동의 한국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구와바라는 1965년 당시 복개공사가 진행중이던 청계천을 관심있게 다루었다. 오물이 흐르는 강바닥엔 콘크리트 기둥이 들어서 있고 주변으로는 아직 3층 건물의 판자집이 늘어서있던 시절이다.
구와바라는 한 책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청계천이 서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있었던 덕분에 나는 가끔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걸어서 촬영을 하러 갔었다. 아침 8시 정도에 청계천에 도착해보면 주민들의 생활을 외부에서 엿볼 수 있었다. 부산의 피난민 지역과 같이 전기배선은 들어와 있었지만 상하수도 설비는 없었다….”
김영섭사진화랑에서 ‘구와바라 시세이 청계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1965년 청계천과 청계천변의 사람들을 찍은 사진 25점이 전시되고 있다. 엿장수, 세탁소, 미장원, 구두닦이 등 당시의 사회상의 단면들이 사진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스며들어 있다. 사진가의 증언처럼 “외부에서 엿본” 앵글이 많은 것은 시대의 특징이자 한계점이라 하겠다. 당시 외국 매체인 일본의 한 잡지사에서 파견된 구와바라가 국내의 기자들에 비해 한결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고는 하지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유롭게 촬영하긴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비슷한 시기 부산에서 활동하던 사진가 최민식도 “여러차례 간첩으로 몰려 경찰서과 보안부대에 잡혀들어가곤 했다”는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스냅도 몇 장 있다. 골목길 앞에서 수줍은 듯 웃음짓는 여인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뒤로는 기름병을 든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엔 몇 초간의 시차밖에 나지 않는 같은 앵글의 사진 두 장이 붙어 있다. 이 사진들은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맨위엔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운데는 빨래나 펌프질을 하거나 더러운 물을 버리는 사람이, 그리고 맨 아래엔 바로 그 더러운 물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청계천 사람들의 생활을 단 한 컷으로 보여주는 적나라한 장면이다. 9일 오후 개막 첫날인데도 전시장에 심심치 않게 관객들이 들어왔다. 옛날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찾아왔다는 서영호(23)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인데도 웃음띤 표정이 보이는 사진이 있어 특이했다”며 “(사진이 찍힌) 1965년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이 친근해보였다”고 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이해인(25)씨는 “사진을 다 보고 나니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떤 장면이 슬펐냐고 묻자 “(사진 속에서 나타난) 1965년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청계천 복개 공사를 앞두고도 오히려 편안하고 행복해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지금 개발이 완료된 (청계천의) 모습은 한국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43년 전에 비해 부족하지도 않는 것 같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이 사진속의 옛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보는 것이 좋은 공부”라는 이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크지 않은 전시지만 볼 이유가 충분하다. 10월 14일까지 열린다. www.gallerykim.com




2004년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한 구와바라 시세이

일본의 유명 원로사진가 중엔 ‘매그넘코리아’에 참가했던 일본 유일의 매그넘 회원 구보타 히로지(69)가 있고 비슷한 연배로 구와바라 시세이(72)가 있다. 두 사진가 모두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구보타는 남과 북을 모두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구와바라는 1964년을 시점으로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시위 등 격동의 한국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구와바라는 1965년 당시 복개공사가 진행중이던 청계천을 관심있게 다루었다. 오물이 흐르는 강바닥엔 콘크리트 기둥이 들어서 있고 주변으로는 아직 3층 건물의 판자집이 늘어서있던 시절이다.
구와바라는 한 책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청계천이 서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있었던 덕분에 나는 가끔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걸어서 촬영을 하러 갔었다. 아침 8시 정도에 청계천에 도착해보면 주민들의 생활을 외부에서 엿볼 수 있었다. 부산의 피난민 지역과 같이 전기배선은 들어와 있었지만 상하수도 설비는 없었다….”
김영섭사진화랑에서 ‘구와바라 시세이 청계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1965년 청계천과 청계천변의 사람들을 찍은 사진 25점이 전시되고 있다. 엿장수, 세탁소, 미장원, 구두닦이 등 당시의 사회상의 단면들이 사진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스며들어 있다. 사진가의 증언처럼 “외부에서 엿본” 앵글이 많은 것은 시대의 특징이자 한계점이라 하겠다. 당시 외국 매체인 일본의 한 잡지사에서 파견된 구와바라가 국내의 기자들에 비해 한결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고는 하지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유롭게 촬영하긴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비슷한 시기 부산에서 활동하던 사진가 최민식도 “여러차례 간첩으로 몰려 경찰서과 보안부대에 잡혀들어가곤 했다”는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스냅도 몇 장 있다. 골목길 앞에서 수줍은 듯 웃음짓는 여인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뒤로는 기름병을 든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엔 몇 초간의 시차밖에 나지 않는 같은 앵글의 사진 두 장이 붙어 있다. 이 사진들은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맨위엔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운데는 빨래나 펌프질을 하거나 더러운 물을 버리는 사람이, 그리고 맨 아래엔 바로 그 더러운 물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청계천 사람들의 생활을 단 한 컷으로 보여주는 적나라한 장면이다. 9일 오후 개막 첫날인데도 전시장에 심심치 않게 관객들이 들어왔다. 옛날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찾아왔다는 서영호(23)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인데도 웃음띤 표정이 보이는 사진이 있어 특이했다”며 “(사진이 찍힌) 1965년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이 친근해보였다”고 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이해인(25)씨는 “사진을 다 보고 나니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떤 장면이 슬펐냐고 묻자 “(사진 속에서 나타난) 1965년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청계천 복개 공사를 앞두고도 오히려 편안하고 행복해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지금 개발이 완료된 (청계천의) 모습은 한국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43년 전에 비해 부족하지도 않는 것 같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이 사진속의 옛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보는 것이 좋은 공부”라는 이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크지 않은 전시지만 볼 이유가 충분하다. 10월 14일까지 열린다. www.gallerykim.com




2004년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한 구와바라 시세이